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13일 (월)
전체메뉴

정민주 기자의 영화읽기- 미씽:사라진 여자(감독 이언희)

여성에 의해 여성을 담다
여배우와 여감독 시선으로 본 여성
사라진 아이를 찾으며 일어나는

  • 기사입력 : 2016-12-05 22:00:00
  •   
  •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의지하는 사람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에 잃는다면?

    어느 날 평범한 한 여성에게 견디기 힘겨운 일이 일어난다. 이혼 후 육아와 생계를 혼자 책임져야 하는 워킹맘 지선(엄지원)은 헌신적으로 딸을 돌봐주는 한족 보모 한매(공효진)가 있어 늘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지선은 보모 한매와 딸 다은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
    메인이미지

    지선은 아이와 보모가 사라지자 경찰서를 찾아가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다. 도리어 이혼한 상황에서 양육권을 뺏기지 않으려 아이를 의도적으로 숨긴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된다. 경찰도, 전 남편도, 자신의 변호사조차 믿어주지 않자 지선은 홀로 한매와 딸의 흔적을 추적한다.

    정체불명의 남자와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알게 된 한매는 더욱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그동안 반년간 같은 집에 살면서 알았던 이름과 나이, 출신 등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에 지선은 충격에 빠진다.
    메인이미지

    엄지원과 공효진이라는 충무로를 대표하는 30대 여배우들이 만났다. 내공이 상당한 두 여배우는 서로 시너지 효과를 보여주며 여배우의 힘이 느껴지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민낯 연기는 물론이고 색보정조차 포기하며 여자가 아닌 엄마를 연기해 관객의 공감을 샀다.

    엄지원은 딸을 찾아 헤매는 장면을 촬영할 때 실제로 머리를 며칠 동안 감지 않았고 여기저기 찢어진 옷을 입었다. 딸을 잃은 엄마가 제정신일 리 없다는 연기 계산에서다.

    ‘패션피플’로 손꼽히는 공효진의 변신도 눈여겨볼 만하다. 축 늘어진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머리도 대충 동여매고 나온다. 뿐만 아니라 얼굴에 점을 30개나 찍고 촬영했다. 농촌에 시집온 중국 여자가 밭일을 하며 살았을 텐데 햇볕에 그을리고 점이 있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두 여배우는 서로 연기 대결이 아닌 주근깨 대 여드름의 대결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메인이미지

    이런 연기 투혼이 영화에 묻어나서인지 자칫 아이보다 일이 우선이라고 비난받을 비호감 캐릭터를 순화시키고, 80년대 유행하던 호스티스 영화처럼 보일 수 있는 스토리를 요즘 시대에 맞도록 리얼리티 있게 연출할 수 있게 됐다.

    여자 배우와 여자 감독이 만든 영화다 보니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감독은 이를 정면으로 돌파하고 있다. 이언희 감독은 인터넷 매체인 ‘헤럴드 POP’와의 인터뷰에서 “여성들은 흔하게 겪는 상황이다. 영화처럼 그렇게 극적이진 않더라도 비슷한 경험은 해봤을 것이다. 여자라서 무시당하는 현실이 영화 속에 표현이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사실 여성의 경우 습관적으로 상대를 배려하고 생각하게 되더라. 영화를 보는 시선 차이도 그 때문에 컸다”고 말했다.

    메인이미지


    실제로 영화는 최근 대두된 여혐(여성에 대한 혐오나 멸시, 여성에 대한 차별과 비하)에 대한 사회 문제를 담고 있다. 영화 속에서 지선의 시어머니는 “남자는 여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 대사를 내뱉는다. 다은이가 납치된 것이 며느리 지선의 탓이라고 몰아세우지만 정작 지선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녀에겐 늘 있는 일이어서 그게 언어폭력인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생활 속에서 이러한 불평등을 접하지만 이미 각인된 문제여서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점을 꼬집고 있다.

    엄지원은 “단순히 엄마가 납치된 아이를 찾는 스토리였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연기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 것도 배우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이슈를 연기를 통해 문제들을 환기시키고, 관객들로부터 생각하게끔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스토리 개연성을 강조하려다 보니 감성에 치우치게 됐고, 이로써 장르로 내세웠던 스릴러는 약해지게 됐다. 스릴러물 티저영상을 보고 극장을 찾은 관객이라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충무로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여배우를 내세웠다는 점과 외국인, 이혼녀와 같이 상대적으로 약한 존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험난한지를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하다.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정민주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