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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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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빚’ 없다고 좋기만 할까- 이문재(사회2부장)

  • 기사입력 : 2016-12-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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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빚지는 것을 반길 사람은 없다. 애초부터 떼먹고 야반도주를 작정한 것이 아니라면 빚은 곧 고통이다. 그러나 빚이라고 다 힘든 것은 아니다. 이자보다 높은 수익이 나는 곳에 투자했거나, 장래가 유망한 곳에 묻어 뒀다면 스트레스는 덜하다. 빚을 진 사람들 대부분은 맘 편히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힘든 상황에서 빚을 얻고, 쥐꼬리만한 수입으로 원금과 이자를 갚아 나가는 신세라면 대출금리가 오르는 요즘에는 죽을 맛일 것이다.

    지자체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빚이 괴롭다. 빠듯한 예산에 이자까지 물어야 하는 형편이라면 갑갑하다. 경남 지역에도 자체수입으로는 공무원 인건비도 감당하지 못하는 지자체가 절반 정도다. 전국 시·도 재정자립도는 2015년 기준 42.9%로, 경남은 10번째인 34.2%를 기록했다. 이런저런 사업을 벌이느라 지방채를 발행한 것이 빚이 되고 만것이다. 경남도를 시작으로 일제히 빚 청산에 나섰고, ‘채무 제로’를 달성한 기초 지자체가 하나둘씩 늘고 있다.

    ‘채무 제로’를 선언하는 지자체가 탄생할 때마다 ‘빚 없는 게 과연 최선인가’라는 의견도 만만찮다. 지자체가 빚을 얻지 않고 사업과 정책을 맘껏 펼 수 있다면 최고로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자체가 일반 회사처럼 보유금을 쌓아두고 있을 리 만무하고, 스스로 돈을 조달할 수 있는 방법도 무한하지 않다.

    ‘채무 제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아껴야 한다. 일반 가정과 마찬가지로 의식주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야 한다. 이와 함께 수입을 극대화할 수밖에 없다. 빚 청산에 나선 지자체들의 패턴을 보면 대개가 비슷하다. 폼나는(의) 행사·축제 줄이고, 새는 경상·복지(식) 틀어막고, 급하지 않은 기반시설(주) 공사 미루기 등이다. 대신 체납세 징수 등 세수 증대는 강도를 높인다. 쓰는 것 줄이고, 버는 것 늘리면 당연히 곳간은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채무에서 벗어나려는 지자체의 또 다른 변화는 정부 예산을 끌어오기 위해 공모사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다. 공모사업은 정부지원으로 지역민들이 원하는 사업을 할 수 있어 지자체로서는 놓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지자체마다 공모에 심혈을 쏟는데, 대부분이 지역에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업을 공모 당락 여부에 따라 결정하려는 속셈이라면, 공모에서 탈락하면 안 해도 되는 사업인지는 모르겠다. 공모마다 통과되면 좋겠지만, 나랏돈 얻어 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지자체가 당장 급하고 필요한 사업이라도 빚을 내서는 안 하겠다면 도리가 없다. 가장(家長)이 자신의 뜻대로 살림을 꾸려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장 죽거나 어찌 되지 않으니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선심성 사업, 방만한 경영, 비효율적 예산 운용 등은 피해야 할 것들이다.

    ‘빚 없는 지자체’. 듣기도 보기도 좋지만 빚이 무서워 놓칠 수 있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유리창을 닦지 않으면, 유리를 깰 일도 없다. 뿌연 유리 너머로 세상을 보면 그뿐이지만, 창(窓)을 낸 이유가 있듯 빚의 필요성과 유용성도 분명 있다. 빚을 피하려다 주민 삶의 질이나 지역경제 등을 쪼그라들게 하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 빚은 지자체나 개인에게나 가치판단의 문제다. 마음먹기에 따라 짐이, 또는 희망이 된다. 단순히 ‘채무 0’의 마법에 걸려 미래보다 현재에 머물지 않길 바란다.

    이문재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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