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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질서와 권위 그리고 안전- 박한규(대한법률구조공단 홍보실장)

  • 기사입력 : 2016-12-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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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여름 225명이 사망한 대한항공 801편 괌 추락 사고. 기장은 김포~괌 구간을 여덟 번 운항한 경험이 있고 비행기는 항공계에서 걸작으로 평가받는 보잉 747이었다. 그날 공항의 항공 유도등은 고장 난 상태였지만 그 장치 없이도 1500여 대의 비행기가 착륙했고 기상은 나빴지만 심각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기장은 시계 착륙을 시도했는데 비행 전 점검 미팅에서 이미 재확인했던 착륙 지원 장치(VOR)의 위치를 공항으로부터 4.8㎞ 떨어진 언덕이 아닌 공항으로 착각해 착륙 중 언덕에 충돌하고 말았다.

    블랙박스는 그때 조종실 상황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비행기가 활주로가 아닌 니미츠 언덕 상공 152m(500피트) 지점에 도달한 오전 1시 42분 정각, 충돌 방지장치는 경고음을 울렸고 19초 후 부기장은 기장에게 ‘착륙, 포기합시다’라고, 이어 3초 후 기관사는 ‘올라갑시다’라고 ‘공손하게’ 말한다. 1초 후 기장이 ‘고 어라운드(Go around)’를 외쳤을 때 길이 70m, 중량 212t, 승객 254명이 탄 비행기는 이미 지상 30m까지 접근해 있었다. 부기장이 ‘착륙, 포기합시다’라고 ‘공손하게’ 말하는 대신 고함을 질렀으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라고, 조종간을 당겼다면 다시 착륙을 시도할 기회가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사회학자 홉스테드는 세계 각국 조직의 문제해결 방법, 협업 과정 그리고 상급자에 대한 태도를 조사한 적이 있다. 그 결과 위계질서와 권위를 얼마나 존중하는지를 나타내는 ‘권력 간격 지수(Power Distance Index, PDI)’를 각국의 문화를 구분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으로 제시했다.

    PDI가 낮은 나라, 즉 위계질서와 권위에 대한 존중이 낮은 사회에서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것을 부끄러워하고 은밀하게 행사하는 반면 반대의 경우에는 엄격한 격식을 갖추고 대중과 멀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PDI가 낮은 오스트리아 수상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고 네덜란드 수상은 포르투갈에서 캠핑카를 타고 휴가를 보내는 데 반해 PDI가 높은 프랑스에서는 이런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고 했다.

    어느 항공사고 전문가는 전 세계 조종사들의 PDI를 조사했는데 PDI가 높은 나라는 브라질, 한국, 모로코, 낮은 나라는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순으로 나타났다.

    조직은 부여받은 분명한 사명(使命)이 있고 그것은 그 조직의 존재 가치이다. 사명을 잘 수행하기 위해 역할을 나누고 지휘 복종 관계를 만들고 계급도 부여한다. 자연스럽게 그 조직만의 고유한 문화도 형성된다. 문화는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강력한 동인이 된다. 더구나 그 유산은 힘도 강하고 구석구석 퍼져 있어 계속 불필요한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래서 문화를 조직 역량의 중요한 요소로 본다.

    국가는 집단이지만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는 분명 조직체다. 정부에 부여된 사명은 ‘국민의 안전과 행복 보장’이다. 조직의 역량은 비상상황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힘은 특정 상황이 닥쳐야 써 볼 기회가 생기고 또 힘을 써 본 후라야 그 효용성과 타당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만의 문화나 문화적 유산이 부여된 사명을 완수하는 데 걸림돌이 되거나 은신처 역할만 한다면 분명한 평가와 분석 그리고 교정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타고 있는 ‘대한민국’을 조종하는 사람들의 PDI가 궁금하다. ‘나의 안전과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홉스테드가 PDI를 측정하기 위해 만든 설문에는 이런 문항이 있다. “권력층이 특권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이 문항이 유독 크게 와 닿는 오늘이다.

    박한규 (대한법률구조공단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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