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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는 우리 모두를 위한 비용이다- 황미화(위드에이블 원장)

  • 기사입력 : 2017-02-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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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정된 재원으로 마을 진입로를 포장할 것인가 또는 노인복지회관을 지을 것인가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면, 어느 것을 선택하든 포기한 사업은 선택한 사업의 희생이며 비용이다. 선택한 사업에서 예상되는 기대효용이 포기한 사업에서 나타나게 될 그것보다 같거나 클 때 선택의 타당성이 인정된다. 그렇지 않을 때는 비경제적 또는 비합리적 선택으로 평가될 수 있다. 한정된 재원의 투입기준을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예시한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 할 경우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이나 마을 등 특정집단의 관점에서 한정된 자원으로 최상의 효과를 달성하기 위해 이러한 선택기준은 일면 타당하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람들은 장애인, 노인, 여성, 아동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비용은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효용이 없기 때문에 비합리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즉 복지비용의 효용은 오직 혜택을 받는 약자에게만 주어지고 사회적 전체에는 아무런 이득이 없거나 있다고 해도 미미하다고 보는 것이다. 심지어 복지비용은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생산성을 감소시키는 필요악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오로지 한정된 개인과 집단의 관점은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선택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타당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남을 돕는다는 것은 개인의 순수한 자선행위로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초월해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선택 기준은 오류가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사회적 연대의 틀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통한 경쟁도 중요하지만 상호 협력하고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사회체계다. 모든 사회 구성원은 인간이라는 그 자체만으로 존엄하며 기본적 욕구는 최대한 충족돼야 한다. 이러한 원칙이 배제된 사회는 이미 사회라고 할 수 없는 약육강식의 정글에 지나지 않는다.



    개인의 삶을 오직 개인의 능력과 경쟁만으로 해결하는 것은 전혀 사회적이지 못하다. 사회란 경쟁적이고 능률적인 기준을 초월해 형평성, 인간성, 존엄성 등 또 다른 기준 즉, 사회적 기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를 위한 비용은 개인적 관점에서 일시적으로 비경제적일지라도 사회적 측면에서는 합리적이고 사회투자로서 당위성이 인정돼야 한다.

    지나치게 경제논리와 경쟁에 치중한 결과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이 침해되고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역사적 경험이 있었다. 그 결과 빈부격차, 노사갈등, 체제변화 등 사회적 갈등은 물론 전쟁과 테러 등 국가 간 갈등을 낳기도 했다. 그 대가는 너무나 비싸며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런던에 본부를 둔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은 지난달 16일 지난해 세계 최상위 부자 8명이 전 세계 인구의 소득 하위 50%에 해당하는 36억 명의 재산과 같은 부를 소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재산의 합이 하위 50%와 맞먹는 최상위 부자들의 수는 2010년 388명에서 2012년 159명, 2014년 80명으로 급격히 줄어들어 2016년에는 8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에 반해 세계인구의 평균 10명 중 1명은 하루에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이러한 불평등은 전 세계 수억 명을 빈곤으로 몰아가고, 우리 사회를 파괴하며 민주주의를 훼손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회복지는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쓰고 남은 자원을 불쌍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베푸는 자선사업이 아니다. 사회 발전과 번영을 위해 인류의 지혜를 모아 만든 최상의 사회 제도이다. 사회복지 비용은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해 우리가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최소한의 사회 비용이며 보험이다.

    황 미 화

    위드에이블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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