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8일 (일)
전체메뉴

[수습기자 25시] 49기 이한얼 (2) 주제파악

  • 기사입력 : 2017-03-31 14:48:45
  •   

  • "자만심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너무 높게 생각하는 데에서 생기는 쾌락이다" - 스피노자

    경남신문의 수습기자가 된 후 나는 많은 것을 덜어냈다. 착각, 자만, 약간의 자신감과 요즘 관리가 소홀했던 꽤 많던 뱃살까지. 이것들을 덜어낸 후 많은 것이 늘었다. 우선은 기자라는 직업을 대하는 내 자세가 진지하고 조심스럽게 변했고, 면학(勉學)의지가 아주 많이 늘었다. 내가 소화해내는 주간 독서량도 늘었다. 술도 조금 늘었다. 예전엔 소주 3잔이 한계였다면 이제는 죽었다 생각하면 4잔까지는 가능할 것이다. 또 내 벨트의 남은 칸 수가 늘었다. 면접을 대비해 샀던 '신상'양복이 벌써 커져버렸다. 체중은 줄었지만 좀 더 '무거운' 사람이 됐다.

    입사 전에 나는 제법 잘난 맛에 살았다. 첫 회에서 밝혔듯 나는 내 나름의 위기를 꽤 잘 극복했다. 공부도 하니까 됐다. 그렇게 서서히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타성에 젖어가고 있었다.

    입사 이후 첫 동행교육에 나는 마산 동부경찰서로 출근하라는 말을 들었다. 내심은 흥분됐던 것 같다. 드디어(출근 고작 10일차) 선배들이 하는 '진짜 기자'의 업무를 경험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흥분된 마음을 감추려 애쓰지 않고 마산 동부서로 출근했다. 이 날 선배는 개강시즌을 맞아 대학가 원룸촌에 허위매물이 판친다고 하니 실태를 한 번 파악해보라며 나를 홀로 대학가로 보냈다. 나는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리라 결심하고 비장하게 대학가로 향했다.

    원룸 매물 광고가 수천 수백 장이 붙어있는 게시판 앞에서 서성이는 한 남성을 목격했다. 나는 호기롭게 그에게 향했고, 원룸 허위매물 등에 대해 수십 가지 질문을 쏟아냈다. 귀찮아하는 기색이 보였지만 끈질기게 인터뷰를 마치고 나는 그가 했던 말들을 수없이 되뇌며 기록해 선배에게 보고했다.

    메인이미지

    결과는 나의 참패였다. 나는 기사의 핵심을 제대로 짚지 못했고, 인터뷰에 응한 시민의 이름과 거주지 등 기본적인 정보는 아예 간과하고 있었다. 난 그와 사담을 하며 시간을 버린 것이다. 내가 한 인터뷰는 기사에 쓰일 수 없었다.

    부끄러웠다. 얼굴이 달아오르며 식은땀이 흘렀다. 애써 외면하기만 했던 내 민낯이 낱낱이 드러나는 기분이었다. 나의 그럴듯한 포장을 뜯어놓은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까지 나는 '순간의 쾌락'에 취해 별 것 아닌 성과에도 스스로를 높여왔다. 잘난 맛에 살아오던 내가 이제는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가 왔다.

    기자로서 나는 아직 무엇도 아니다. 입사 후 지금까지 늘어난 것들에 대한 자만을 버리고 배움에 임해서 언젠가는 선배들처럼 현장을 장악할 때까지, 양복 뿐 아니라 내 '신상'구두 밑창이 닳도록 쫓아가며 배워야겠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한얼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