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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25시] 49기 박기원 (5) 노트북

  • 기사입력 : 2017-04-25 1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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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구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생존 도구를 손에 쥐는 날에는 밤잠을 설친다. 도구를 이용해 생존을 이어나간 호모사피엔스의 유전자가 내 안에 분명 존재하는 느낌이다. 차가운 쇠의 느낌이 손을 통해 전달되면 왠지 모를 희열을 느낀다. 괜한 책상 모퉁이를 톱으로 날려보기도 하고 잔뜩 조여져 있는 안경 나사를 끽소리 날 때까지 돌려보기도 한다.

    수십 가지 기능이 있는 도구들을 손에 쥐면 각각의 쓸모에 대해 고민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이것만 손에 쥐고 있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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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구에 애착을 갖게 된 계기는 공사현장에서 만난 목수들의 연장 탓이다. 목수의 허리에 둘려 있는 연장 가방에는 몇 개의 차갑고 날카로운 연장이 주인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연장은 손에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적지만 사용하는 방법은 가지각색이다. 연장을 감싸는 자루에는 주인의 표식이 새겨져 있다.


    조각칼로 정성스레 이름을 적은 이도 있고, 예술품에 있을 법한 화려한 낙관을 새긴 이도 있다. 이들은 연장을 제 몸과 같이 여긴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연장을 숫돌에 갈아 날을 벼리고 작업이 끝나면 또다시 이 과정을 반복한다. 목수의 연장은 밥을 벌어주는 수단이며 생존과 직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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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벌이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장이지만 이들의 연장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허리에 차고 있는 그 무게 때문일 것이다. 대체로 망치, 대패, 끌, 먹통을 차고 다닌다. 이들은 하나의 연장으로 각기 다른 작업을 한다. 목수를 보면 연장의 단순함에 놀라고 연장을 통해 뽑아낸 결과물을 보고 다시 한번 놀란다.

    한날 이들이 가지고 있던 끌의 생김새가 특이해 허락 없이 이리저리 만져보며 버릇처럼 그 쓰임새를 살폈다. 끌 주인은 단순히 자기 연장을 만졌다는 이유로 물어뜯듯이 나에게 호통치며 연장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아차 싶었다. 목수에게 연장은 단순히 도구로서의 의미 이상이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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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습 기자의 가방에도 생존을 위한 몇 가지 도구가 있다. 사사로운 것을 제외하고 동기들과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면 단연 노트북이다. 나는 생존 도구 중에 노트북이 가장 맘에 든다. 이유는 일단 최신형이다. 공책만큼 가볍고 뽀얀 광채를 뿜어내는 수습 기자의 노트북을 모두가 부러워한다. 노트북은 한 달이 지나면 곧장 구형이 돼버리지만 수습 기간 동안만이라도 신상으로 간직하고 싶다. 나는 두어 달 동안 노트북을 만지작거리며 도구에 대한 집착을 드러냈고 서서히 내 손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대학교와 직장을 거치며 많은 노트북을 소유했지만 이번 녀석은 좀 더 애착이 간다. 기자의 생존과 관련된 도구이기 때문이다.

    노트북은 대부분의 기자가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도구지만, 여기서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은 천차만별이다. 현장에서는 여러 기자가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취재한다. 하지만 노트북을 거쳐서 나온 결과물들은 제각각이다. 두 달여를 노트북과 함께했다. 여태껏 내가 노트북으로 쓴 기사들을 살펴보자면 도구가 가지고 있는 성능의 채 2할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익숙해지기 위해 주말에도 버릇처럼 꺼내 만지작거리지만, 노트북을 거쳐 나오는 결과물의 발전 과정은 더디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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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후보 유세 현장에 나간 날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생존 도구를 재빨리 꺼냈다. 후보는 거침없이 자신의 공약을 쏟아냈고 나는 노트북으로 변환된 문자를 쏟아냈다. 40분 가까이 진행된 유세에 노트북에는 노란 꽃가루가 소복이 쌓였다. 유명 인사를 눈앞에서 본다는 설렘도 있었지만 한 발짝 앞에 마주 선 그를 두고 내 눈은 오로지 생존 도구에 집중돼 있었다.

    도구에 익숙해지는 방법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더 자주 만져주는 수밖에 없다. '생존'이라는 이름이 붙는다면 더더욱 가까이 둬야 한다. 2월에 개봉한 노트북은 어느덧 구형이 되어가고, 내 수습 기간은 석 달을 향해 가고 있다. 노트북은 내 기자 나이와 함께 가는 생존 동반자다. 네모반듯한 단순한 도구지만 뿜어져 나오는 결과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목수의 가방에는 날카로운 생존 도구가 있듯이, 기자의 가방에는 노트북이라는 생존 도구가 있다. 거친 취재 현장에서 도구를 이용해 살아남을 수 있도록 더 많은 애착을 두려 한다. 좋은 기사를 써내기 위해 도구의 다양한 쓸모에 대해 고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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