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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3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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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주 기자의 영화 읽기- 악녀(감독 정병길)

보여줄게, 액션의 신세계
칸영화제 초청받은 여성 원톱 액션영화

  • 기사입력 : 2017-06-12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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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0회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을 받은 데다 국내선 찾아보기 힘들었던 여성 원톱 주연의 액션영화라는 입소문으로 단번에 대중의 관심을 모은 영화 ‘악녀’가 개봉했다. 탄탄하게 짜인 액션신이 한국 영화계 신기원을 열었다는 호평과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불명확하고 스토리가 엉성하다는 혹평이 극명하게 갈린다.

    영화 ‘악녀’는 보편적인 선과 악에 대한 기치를 곱씹게 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다소 허술하고 특출나지 않은 스토리를 상쇄하는 감독의 기발하고 탄탄한 액션 연출은 관객을 휘어잡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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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변에서 자란 영화 속 주인공 숙희(김옥빈)는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며 거친 인생 속으로 휘몰아치게 된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어릴 적부터 중상(신하균)에게 킬러로 키워지며 그에게 정을 쏟았지만 결국 그마저 잃게 되자 조직폭력배 일당을 홀로 쓸어버리고 경찰에 붙잡힌다.

    공식적으론 이미 사망처리된 숙희는 뱃속의 아이의 안전과 자유를 보장하는 조건으로 국정원 산하의 비밀조직원이 된다. 비밀훈련소에서 특급훈련을 수행한 그녀는 퇴소해 연극배우로 위장해 미션을 수행해 간다.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현수(성준)와 가정을 꾸리며 평범한 삶을 꾸리고 싶어하던 어느 날 죽은 줄만 알았던 중상이 자신의 타깃임을 알게 되고, 자신을 둘러싼 음모와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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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도입부에서는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화려한 액션신이 펼쳐진다. ‘고프로 헬멧’에 카메라를 장착해 관객이 마치 롤플레잉게임 ‘서든 어택’을 직접 하는 듯한 느낌을 줘 이색적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도망갈 곳 없이 타이트하게 앵글을 잡아 불안함 속에서 긴장감과 몰입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여기에 달리는 오토바이에서 장검을 휘두르거나 여주인공이 자동차 보닛 위에 올라타 손을 뒤로한 채 운전하는 장면 등에서는 창의력과 기술력이 돋보인다.

    이 밖에도 권총, 기관총, 단검, 장검, 도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무기를 동원하며 다양하고 디테일한 액션 시퀀스를 완성, 짜릿하고 실감나는 장면을 선보여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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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액션보다 인상적인 것은 영화 초반 숙희가 비밀의 공간에서 탈출하는 장면 구성이다. 초반 10분의 격투 장면과 대조적으로 숙희가 처음 마주하는 것은 바로 여성들이 발레를 연습하는 공간.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며 이전과 단절된 상황을 직시했음을 암시한다.

    가까스로 다음 방으로 도망가지만 결국 또 칼이 난무하는 주방으로 이어지는데, 결국 칼을 휘두를 수밖에 없는 숙명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연극무대와 메이크업 분장실을 보여주며 숙희가 민낯에 덧입혀진 새로운 삶을 살게 됐음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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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스턴트맨 출신의 영화감독의 내공을 맘껏 보여주지만 내용에서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다. 게다가 여배우를 원톱으로 내세워 여성의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기존 여성 캐릭터의 전형을 깨지 못하고 있다. ‘아저씨만 내 곁에 있어 주면 난 복수 같은 거 잊고 싶은데’와 같은 숙희의 대사와 웨딩드레스를 입고 총을 쥐게 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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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과 악은 어떻게 구분될까. 그간 영화에서 가해자는 ‘선(善)’, 피해자는 ‘악(惡)’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구조를 견지해왔다. 이를테면 히어로물에서 악당과 영웅으로 나누어 관객들이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을 응원하게 하는 구도처럼 말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절대선, 절대악이 아닌 상대적이고 환경적인 요인으로 캐릭터의 성정이 변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치는 것이다.

    영화 ‘악녀’ 속 주인공도 같은 맥락에서 캐릭터를 완성하며 다음과 같은 대사로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해답을 준다. “지금 보여줄게. 당신이 날 어떻게 만들었는지.”

    다만 진일보한 캐릭터 설정과 선악 구도에도 숙희가 악녀가 된 이유가 ‘모성애’ 또는 ‘신파’로 귀결돼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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