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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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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산하, 한반도, 산천- 최영욱(평사리문학관장)

  • 기사입력 : 2017-07-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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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 나라일까, 땅일까, 국민일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가끔 하곤 한다.

    ‘일정한 영토를 보유하며, 거기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을 가진 집단’이라는 사전적 의미의 국가를 말하기 이전에 가지는 질문들이 있을 것도 같다. 땅과 국민이 이루는 것이 국가라면 거기엔 국체가 있을 것이며, 국격이 있을 것이며, 의무 또한 있을 것이다.

    촛불로 시작되어 탄핵으로 종결되었던 지난날들을 되짚어보다가 문득 필자보다 먼저 살았던 문인이나 언론인들은 조국의 부재 또는 수난기를 어떠한 필설로 살아냈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5·16군사정변 이전 국제신문 주필로 계시던 이병주 선생은 한 잡지에 쓴 ‘나에게 조국은 없고 다만 산하가 있을 뿐이다’라는 단 한 문장만으로 군사재판에서 10년 형을 선고받고 2년7개월을 복역한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하여 옥중 경험을 통해 쓴 소설 <소설, 알렉산드리아>로 문단에 나오고 <지리산>으로 마친 작가의 ‘산하’.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기보다는 한반도의 주민으로 남고 싶다’라는 글을 게재해 유신법정에 섰던 부산일보 주필 황용주 선생의 ‘한반도’.

    그리고 박경리 선생은 소설 <토지>에서 ‘백성이라 하기도 어렵고 군왕이라 하기도 어렵네. 굳이 말하라 한다면 이 산천을 위해서, 그렇게 말할까’라고 작별인사차 들른 평사리 최치수의 사랑채에서 내놓는 말이다. 이는 독립운동의 길을 떠나는 이동진을 두고 ‘망해버린 나라의 군왕을 위해선가, 아니면 백성을 위해선가’라고 묻는 최치수에게 던진 답이자 소설 <토지>가 지닌 골격이기도 할 터인데.

    산하, 한반도, 산천. 이 동의어들이 품은 함의가 왜 그렇게도 크게 다가왔는지도, 지난 촛불에서야 깨달았다.

    4·19혁명을 잽싸게 탈취했던 군사쿠데타 그 시간의 ‘산하’. 정권 연장을 위한 유신선포 시기의 ‘한반도’. 망해버린 나라의 ‘산천’. 그리고 촛불과 탄핵과 새로운 대통령 시대의 한반도, 산하, 산천, 능소화도 피고 낮 뻐꾸기는 줄기차게 운다. 이 산하에.

    최영욱 (평사리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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