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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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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여름 풍경- 최영욱(평사리문학관장)

  • 기사입력 : 2017-07-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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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은 어김이 없다. 지난겨울은 여전히 추웠고, 봄은 좋았으나 짧았다. 여름. 늘 좁다고 생각하는 이 나라의 북쪽에 내리는 비는 거칠고 거침없이 쏟아져 가옥과 도로가 침수될 때, 필자가 사는 남쪽에서는 폭염의 날들이었다.

    우연히 쪽방 같은 집들이 늘어선 길을 걷다가 에어컨 실외기의 숫자를 세곤 한 적이 있다. 요즘처럼 무더위가 맹위를 떨칠 땐 에어컨이 가장 손쉽고 적절한 방법일 터인데, 그나마도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 더위를 이기고 있는지가 걱정됐다. 하지만 에어컨 실외기를 통해 배출되는 더운 공기와 습기는 외부 온도와 습기를 증가시키는 것은 물론, 지구를 더욱더 뜨겁게 만드는 악순환의 연속일 터여서 자연은 어김없이 받는 만큼 돌려줄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시선을 돌리면 폭염 속에서도 숲들은 의연하다. 시선 깊숙이 들어오는 숲들은 초록으로 검다. 강 속에 담긴 산도 더욱 검어 보인다. 심연으로 갈앉은 검푸른 산이 그윽하고 깊게 보인다. 어둑시근 저물어가는 강가에 앉으면 여름 숲은 “무섭다. 공포감을 느낀다”는 시인 이상의 말이 퍽 가깝게 다가온다. 봄 한 철 내내 걷어냈다고 여겼던 이름 모를 잡풀이며 칡넝쿨들은 폭염 속에서도 한층 그 기세가 세져 있고, 그 기세에 기가 꺾인 사람들의 기계소리는 더위에 지쳐 있다. ‘풀들이 시드렁거드렁 자랍니다/(중략)/ 봉숭아 채송화 분꽃에 양아욱/ 산나리 고추가 핍니다/ 언니 아우 함께 핍니다/(중략)/어쩌다 비 개인 여름 한나절/시드렁거드렁 그것들 봅니다/긴 듯도 해서 긴 듯도 해서 눈이 십니다’.(김사인의 <여름날> 부분).

    세상은 바라보는 마음에 따라 이렇듯 온도가 다르다. 폭염 아래 ‘시드렁거드렁’거리는 그것들을 바라보면 능소화, 채마밭도 보이고, 거기에 달린 고추며, 가지, 오이도 보인다. 눈 깊고 귀 맑은 시인의 ‘긴 듯도 해서 눈이’ 시리다. 하얗게 내리는 눈만이 세상을 덮는 것이 아니라, 칡넝쿨도, 여름꽃도 세상을 뒤덮고 있다. 보이고, 들리고, 느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자연에서 깨닫는다. 폭염을 버리고 여름을 안고 노는 것. 답은 자연에 있음이다.

    최 영 욱

    평사리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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