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6일 (금)
전체메뉴

[촉석루] 광복 72주년의 단상(斷想)- 김상철(의병박물관장)

  • 기사입력 : 2017-08-22 07:00:00
  •   
  • 메인이미지


    올해는 광복 72주년이 되는 해이다. 매 순간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할 분들이 너무 많다. 특히 독립운동가들과 그 후손들이 국가적 예우를 받아 마땅한데도 상대적으로 불우하고 가난한 삶을 산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 대통령께서 광복절 경축사에서 “최고의 존경과 예의로 독립운동가에게 보답하겠으며, 독립운동가의 3대까지 예우하고 그들의 생활 안정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시간을 거슬러 일제강점기, 의령지역 출신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불같이 살다 간 백산 안희제 선생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임정 요인이기도 한 백산 선생은 부산에 백산상회를 설립하여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조달하는 등 1943년 일제에 붙잡혀 목단강 형무소에서 순국할 때까지 평생을 독립운동에 투신한 분이다. 백산상회는 국권 회복을 위한 독립자금 조달처이자 국내 독립운동 비밀 연락처이기도 했다.

    해방이 되고 귀국한 김구 선생이 누구보다 보고 싶어한 사람은 경주 최부자로 잘 알려진 최준 선생이었다. 임시정부로 들어온 독립자금의 60%가 백산 선생과 최준이 운영했던 백산상회로부터 나왔기 때문이었다.

    김구 선생은 최준 선생에게 조그만 수첩 하나를 보여줬다. 임시정부로 들어온 독립자금 중 백산상회의 것을 정리한 장부였다. 수첩을 한참 들여다보던 최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최준은 자의로, 때로는 백산의 권유에 의한 타의로 엄청난 액수의 독립자금을 내놓으면서 그 돈이 모두 임시정부로 전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백산도 생활해야 하고, 상해로 오가는 여비며, 활동비도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김구 선생이 준 수첩을 보니 백산을 통해 전달된 독립자금이 단 1원의 오차도 없이 임시정부로 전해졌던 것이다. 최준은 백산의 진정성을 조금이라도 의심한 자신을 질책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백산이 묻힌 의령을 향해 큰절을 올리며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잊고 지냈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박물관 전시장 한쪽에 위치한 백산 선생의 유품들을 바라보며 희망을 전하리라 다짐한다.

    김상철 (의병박물관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