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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리랑’을 생각한다- 허충호(김해본부장·국장)

  • 기사입력 : 2017-10-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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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를 구분하는 잣대가 있다면 같은 이념이나 정서를 갖고 있느냐는 점이다. 같은 이념과 이상을 가진 공동체는 이해관계로 얽히고설킨 조직보다 결속력이나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영화 ‘남한산성’을 본 후 느끼는 감상이 작은 공동체마다 달라보이는 것은 그런 이념의 동조화 현상 때문이다. 영화에서 척화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이 내세운 논리는 현재의 보수와 진보이념에 이입돼 제각각 아전인수 격의 해석을 생산해낸다.

    이상과 가치는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개념이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죽음의 위기를 겪었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인간은 자신의 이상과 가치를 위해 살 수 있는 존재, 심지어 그것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존재”라고 설파했다. 여러 집단들이 자신들의 이념을 절대 선으로 떠받들고, 경우에 따라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들의 집단 이상과 가치를 현실화하는 도구로 믿기 때문이다.

    다소 무겁고 딱딱한 주제인 것 같아 화제를 연질로 바꿔보자.


    한민족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되는 단어는 무엇일까? 아마도 ‘아리랑’이라고 할 이들이 많을 것 같다. 어머니라는 단어를 보면서 사랑을 연상 이미지로 떠올리듯 ‘우리 민족’의 연상어는 ‘아리랑’이라고 하면 착각인가. 지난 2012년 아리랑이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으니 대표 연상어로 손색이 없다 할 것이다.

    아리랑의 어원을 두고 여러 설들이 있다. 고려 말 ‘유신들의 망국의 한’에서 찾거나 경복궁 복원 당시 민초들의 고통을 담아낸 데서 비롯됐다는 얘기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아리랑을 ‘참된 나를 찾는 즐거움(我理朗)’이라고 해석한 대목에 눈이 간다. ‘나(我)와 통하는(理) 것을 찾는 과정의 즐거움(朗)’이라는 뜻으로 해석한 게 그럴듯하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아리랑 가사 중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대목은 자신을 찾는 공부를 등한히 하면 삶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아리랑의 어원이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게 핵심 가치는 아니다. 어원이 무엇이든 아리랑의 가치는 우리가 공동체임을 각인시킨다는 데 있다. 우리라는 공동체가 공감하는 그 무엇인가가 아리랑에 담겨 있다.

    전국에 많고 많은 아리랑이 있다. 그 수가 아무리 많아도 모든 아리랑은 개인과 공동체의 정서를 아우른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민족이라면 누구나 유사하게 느끼는 희로애락의 정서를 가락에 싣되 가사는 지극히 개인적인 에피스드로 풀어낸다는 게 공통점이다. 아리랑이 오랫동안 한민족의 연상점에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개인과 단체의 희로애락을 한데 어우르고 조화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북핵문제와 안보논란, 한미FTA 재협상, 경기침체 속에 고질화하는 청년 고실업, ‘적폐논쟁’를 둘러싼 갈등 반목과 정쟁 등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뭔가 답답함이 가득한 현실에서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은 참된 우리를 찾는 과정이 될 수 있다. 마침 오는 24일 김해문화의전당에서 ‘국민통합 아리랑 대공연’이 열린다. 대표적인 아리랑으로 꼽히는 정선·밀양·진도아리랑이 선보인다. 공연장을 찾아 희로애락의 인생사를 온몸으로 느끼고 현재 우리 공동체의 현실과 나아갈 바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허충호 (김해본부장·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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