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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30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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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출신 항일독립운동가 전석순·정의용·최알밤 선생 서훈 신청

정재상 독립운동연구소장·김희곤 자문위원
3인 행적 담긴 수형인 명부·재판 문건 찾아

  • 기사입력 : 2018-02-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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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 출신으로 일본 도쿄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돼 징역 2년 6월의 옥고를 치른 전석순(全錫舜·1900~1954) 선생과 하동군 고전면 3·1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돼 태형 90도를 받은 정의용(鄭宜鎔·1888~1956), 그리고 현장에서 순국한 최알밤(崔혁진·?~1919) 선생의 항일행적을 3·1운동 99년 만에 발굴, 정부에 서훈을 신청했다.

    이번에 문건을 찾아 서훈을 신청한 재야사학자 정재상(왼쪽)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과 김희곤(오른쪽) 자문위원은 국가기록원과 하동군 고전면사무소 등에서 3인의 행적이 담긴 수형인 명부와 재판 관련 문건을 찾았다고 19일 밝혔다.

    정 소장은 “김희곤(전 하동군농민회장)씨의 조부 김성옥 선생의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하동학생 3·1독립운동을 주도한 전석순 선생이 일본으로 건너가 항일투쟁을 펼치다 징역 2년 6월의 옥고를 치른 내용의 문건과 하동군 고전면 3·1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태형 90도를 치른 정의용 선생의 수형인 명부 그리고 현장에서 총살당한 최알밤(최혁진) 선생의 항일행적을 함께 찾게 됐다”고 말했다.

    하동군 고전면 출신인 전석순 선생은 지난 1925년 3월 재일본 노동총연맹 동경노동조합 집행위원에 선임돼 노동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돼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미결 200일)의 형을 받고 지바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전 선생은 이후 만주·천진·연안 등 중국과 국내를 오가며 군자금 모금과 독립군 모집 등을 전개하기도 했다.

    정의용·최알밤(최혁진) 선생은 고전면 성천리 출신으로 지난 1919년 4월 고전면 주교리 장날을 이용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정의용은 만세운동으로 일본경찰에 체포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90도를 받았으며, 최알밤은 체포에 불응하다 현장에서 총살됐다. 김재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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