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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 (1) 교직 은퇴 후 태극권 전수 나선 박재홍씨

[창간기획] 100세 시대, 은퇴자에게 길을 묻다
‘가슴 뛰는 일’ 시작하니 ‘나를 위한 삶’ 열리더라

  • 기사입력 : 2018-03-01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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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년을 맞아 퇴직을 하든 명예퇴직으로 이보다 일찍 직장을 떠나든, 은퇴자들은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기대수명이 길어지고 있는 탓에 은퇴 이후의 삶은 그야말로 제2의 인생이다. 이에 따라 그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긴 세월을 고통스럽게 보낼 수 있지만, 사전에 철저하게 대비하면 새로운 인생을 흥미진진하고 멋지게 보낼 수도 있다.

    한발 앞서 은퇴자의 길을 가고 있는 다섯 분을 만나 그들이 제2인생을 어떻게 준비했고 또 어떻게 개척해 나가고 있는지 들어본다.



    교사는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직업이다. 출생 인구가 폭발적으로 치솟았던 베이비붐 세대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인기 있는 직업이었다. 당시 정부는 교대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국방의 의무도 면제해줬다. 호봉이 쌓이면 요직을 맡아 정년을 향해 내달리면 된다. 마산에서 30여년 동안 교직에 몸담았던 박재홍(66·김해시 관동동)씨는 정년을 7년 앞두고 인생의 두 번째 장막을 열기 위해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그는 홑벌이 가장이었지만 안정된 직장을 정년보다 일찍 내려놓는 데 있어 가족과 불협화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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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여년 동안 교직에 몸담았던 박재홍씨가 김해시 관동동 자신의 집에서 동호인들에게 태극권을 전수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부모는 늙어서 자식에게 기대지 않고 자녀들 역시 대학 졸업 이후에는 자립해 자신들의 인생을 살기로 약속했어요. 물론 자립할 때까지는 가장의 역할을 다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기 위해 내달렸어요.”

    두 자녀가 대학을 졸업하는 날 박씨는 교사를 관두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가족도 이에 동의했다. 박씨가 54세가 되는 해 교사를 그만두고 은퇴 후의 삶을 시작하려 했지만 딸아이의 졸업이 늦어지는 바람에 그의 교사 생활도 계획보다 3년 늘어났다.

    자식들에게 강한 자립심을 주문한 것은 박씨가 평생 만나보지 못한 형들의 영향이 컸다. 박씨 위로는 3명의 형이 있었지만 세상에 나온 지 한 달도 안돼 모두 유명을 달리했다.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다. 겨우 살아남아 외동아들이 된 박씨에 대한 부친의 관심은 유별났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많았던 그는 공고에 진학하길 원했다. 하지만 유교 문화가 몸에 밴 아버지의 완강함을 뿌리치지 못해 결국 마산상고에 진학했다. 교사가 되는 과정도 반강제였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공대로 진학해 기술자가 되고 싶었지만 박씨도 모르는 사이 예비고사 합격증을 아버지가 슬그머니 낚아챘다. 박씨의 아버지는 합격증을 들고서 마산교대 입학처를 찾았고 당당히 1호 접수증을 받아냈다. 그렇게 박씨는 교사의 길을 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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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여년동안 교직에 몸담았던 박재홍씨가 김해시 관동동 자신의 집에서 동호인들에게 태극권을 전수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스스로 인생을 결정할 권리를 박탈당했지만 박씨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옛날 사람 반열에 들고 있지만 박씨 아버지는 1903년에 태어난, 선비로 불리는 진짜 옛날 사람이었다. 여든이 넘어 돌아가신 아버지의 삶을 되돌아보며 박씨는 퇴직 이후의 삶에 더 큰 열망을 갖게 됐다.

    “아버지는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에 비해 장수하셨죠. 제 인생에 있어 기쁜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몰려 왔어요. 급진적인 의학 기술이 발달하지 않더라도 2세대인 저는 아버지보다 최소한 10년은 더 산다고 가정해도 무려 90세라는 결론이 나왔어요. 62세에 정년퇴임을 한다고 해도 최소한 30년을 더 살아가야 한다는 결론을 받아들였을 때는 막막했어요. 정년보다 일찍 교사를 그만둔 것은 아버지의 영향도 일부 있었어요”

    2008년 정년을 7년 남겨두고 명예퇴직한 그는 중국 무술인 태극권 전수에 매진했다. 박씨는 태극권천진수련회의 총교련을 맡아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은퇴 후 그의 생활은 교사를 할 때보다 더 분주해졌다. 김해에 자택을 두고 있지만 김해, 부산, 대구 등 지방뿐만 아니라 서울에 있는 회원들에게도 태극권 수업을 이어가고 있다. 가까운 거리는 차를 타고 이동하지만 서울에서 수업이 있는 탓에 한 달에 꼭 한 번은 비행기를 타야 한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바쁜 활동에도 큰 소득은 남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어 자신의 인생 가운데 어느 때보다 지금이 큰 행복을 주는 시기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는 “돈도 잘 벌면 좋기야 좋죠. 하지만 돈과 무관하게 같은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는 것에 기쁨을 느껴요. 수업을 통해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려고 달려든다면 운동은 곧 노동과 마찬가지가 돼버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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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여년동안 교직에 몸담았던 박재홍씨가 김해시 관동동 자신의 집에서 동호인들에게 태극권을 전수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그가 태극권에 푹 빠지게 된 것은 20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무술인 태극권은 1970년대 우리나라에 보편화되지 않았다. 배우려는 사람이 없으니 가르치려는 사람도 없었다. 말 그대로 불모지였다. 우연히 은사님께 태극권에 관한 내용을 전해 들었고 기대 반 우려 반으로 태극권 독학에 나섰다. 박씨는 태극권을 알아가기 위해 중국과 대만을 오가며 원서를 수집했고 이론 공부부터 시작했다. 힘겹게 시작한 독학은 태극권에 대해 깊은 조예를 가지게 해줬고 덩달아 국제 활동의 기회까지 얻게 됐다. 당시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고 태극권이 중국 무술인 탓에 국제 심판을 채용하는 데도 애를 먹었다. 중국어와 태극권을 남들보다 빨리 알아갔던 그는 중국 무술인 우슈의 국제 심판 자격을 얻게 돼 국제 대회를 오가며 심판으로 활동했다.

    우슈(wushu)는 무술(武術)의 중국식 발음으로 중국 무술을 총칭하는 공식 명칭이다. 우슈 중에는 남권과 장권, 태극권이 있다. 태극권은 우리나라의 태권도와 비슷해 보이지만 공격과 방어의 형태를 취하는 데 큰 차이가 있다.

    가르치는 회원 중에는 중요한 시험을 준비하며 태극권으로 집중력을 키우는 사람이 많다. 특히 사법고시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회원들이 태극권을 배우고 있다. 그는 “요즘에는 스마트폰, 인터넷 때문에 하루 20분 이상 오롯이 집중하는 사람이 드물어요. 제대로 된 자기 시간을 가지려면 지금 현 상황에 집중해야 되는데 현대인들은 그게 잘 안돼요. 태극권의 장점은 단연 집중력 향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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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홍 태극권천진수련회 총교련. /성승건 기자/

    은퇴 이전에는 다들 저마다의 직업과 업무를 맡으며 정년을 향해 달려가지만 은퇴를 맞이하는 것은 사람들의 공통된 일이다. 그는 은퇴 이후 남들보다 경제적으로 윤택하거나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지만 은퇴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꼭 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 바로 ‘꾀 있는 토끼는 굴을 세 개 파 놓는다’는 뜻의 교토삼굴(狡兎三窟)이다. 은퇴 후의 삶을 고민할 때는 적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세 가지 정도는 꼭 염두에 두고 인생 2막을 시작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저는 직장 다닐 때부터 은퇴 이후의 삶을 고민해왔고 가족들에게 충분한 동의를 얻었어요. 100세 인생이라는 노랫말도 있듯이 퇴직하면 40년을 살아가야 해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죠. 그 남은 40년의 계획을 미리 계획하다 보면 좀 더 나은 인생 2막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는 앞으로의 시간을 태극권을 전수하는 데 매진하기로 했다. 70세 이후에는 일반회원들보다는 지도자 양성 교육에 집중해 자신을 대신해 태극권을 전수할 후진을 양성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박기원 기자 pkw@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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