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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 파랑새의 꿈- 이성모(문학평론가)

  • 기사입력 : 2018-04-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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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정가가 후끈 달아올랐다. 전략공천, 대결구도라는 핫이슈로 떠들썩한 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으나 인적이 끊겨 공동화된 통영 성동조선소와 상경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의 얼굴이 함께 보도됐다.

    STX조선해양 등 중형조선소 회생 방안이 중앙정부 및 노사정의 견해 차이, 금융논리로 인해 녹록지 않음은 자명하다.

    이외에도 지방자치단체가 떠안고 가야 할 숱한 난제가 만만치 않다.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민이 자치단체장에게 바라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참상을 줄이고 불공정을 줄이고 악을 제거하는 데에 앞장서”(K.포퍼, 『추측과 논박』)달라는 것이다. 존 듀이가 “모든 지도(direction)란 방향전환(redirection)”이라고 했듯이 정체 혹은 지체된 지역 현안을 굳센 기상과 진취적인 정신으로 앞장서서 처결하는 지도자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아울러 無爲而無不爲(하지 않으면서도 하지 않음이 없는) 지도자, 말하자면 권력을 누리려 하지 않으면서 권력이 미치지 않는 바가 없는 최고의 지역 매니지먼트를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권자의 바람과 아랑곳없이 이번 지방선거 역시 정치 운동에 휘둘릴 것이 우려된다.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대결 구도라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쇼라는 것. 섣부른 판도를 앞세우는 것 자체가 지역주민을 무시한 땅 따먹기식 세력다툼이라는 것. 게다가 맹목적 보수주의 혹은 낙관적 진보주의를 표방해 이념적 대결 구도로 치닫는 지경에 이르면 유권자를 이념에 휘둘리는 편벽된 존재로 전락시키는 꼴이 된다.

    정치인들이 앞세우는 몽상적 유토피아 혹은 혁명적 이상주의야말로 우리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다. 없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정치논리의 근간을 세우거나 제도의 합목적성을 띤 것처럼 여겨지게 하는 그야말로 필요악이다. 이념으로 의장해 선거의 닻을 올린 정치 세력이 있는 한, 권력을 향한 다툼과 정쟁만 있을 뿐 지역의 현안과 비전, 일자와 다자를 이어주는 구심점은 찾을 길이 없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거의 주체인 유권자의 깨어있는 의식이다. 6·13 지방선거는 정치 이념이라는 허구적인 논쟁이 아닐 뿐 아니라 쟁점이 돼서도 안 된다. 역사는 이념의 적에 의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환멸에 무너지는 것이라는 엄정한 진리를 두려워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념으로 진리를 호도하는 세몰이 정국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진리와 거짓으로 하여금 서로 대결하게 하라. 자유롭고 공개적인 대결에서 진리가 불리해진 것을 본 자가 누구인가?”(존 밀턴, 『아레오파지티카』)

    거듭 강조컨대 6·13 지방선거는 우리 지역이 안고 있는 불화, 소외, 불평등, 부당함이라는 제반 난제, 그 인(因)을 처결하는 슬기로운 지도자를 선출하는 데에 있다. 불편부당한 돛을 단 까닭에 정치적 역풍을 두려워하지 않고 바람의 방향을 가늠해 돛을 펴는 당당한 지도자를 선출하는 데에 있다.

    어렵사리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지자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행복한 땅이라는 마음이 절로 일어나게 하는 지자체, 졸속 전시행정 혹은 단체장의 업적 홍보사업이 사라진 자리에 지역의 정체성과 정신적 가치로움이라는 영원성이 깃드는 지자체이기를 바란다. 지자체가 지향하는 공동체의 이상이 개개인의 삶에 낙락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한 유권자로서 ‘파랑새의 꿈’을 그린다. 파랑새의 꿈을 정치 이념으로 추락시키지 않을 넉넉하고 푸른 하늘 같은 지도자를 선출할 6·13 지방선거를 기대한다.

    이성모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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