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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타고 부산에서 런던까지- 김태희(다산연구소장)

  • 기사입력 : 2018-05-0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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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해 전 옛길 걷기에 참가했다. 삼남대로와 영남대로의 옛길을 걷는 것이었다. 호젓하게 걸을 만한 옛길은 많지 않았다. 새로운 자동차도로가 그 위에 지나갔기 때문이다. 한 번 난 길은 시대가 바뀌어도 길로서의 기능성을 그대로 견지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구불구불한 길이 직선화되면서 남은 옛길을 몇 군데 찾아 걸었다. 차령고개, 문경새재처럼 주변에 터널이 뚫린 곳은 옛길로 남은 고갯길을 걸을 수 있었다. 고갯길에서 자동차와 기차가 질주하는 도로와 철도를 내려다보면서 격세지감을 느꼈다. 조선시대를 공부하는 필자인지라 수레와 도로에 관한 실학자들의 주장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연암 박지원이 중국을 여행하면서 주목한 것이 발달한 수레와 도로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재화의 이동이 원활하지 못해 한 지방에서 흔한 것이 다른 지방에서는 귀하다며 한탄했다. “사방 수천 리의 나라에서 백성의 살림살이가 이처럼 가난한 까닭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수레가 다니지 않아서이다. 그 이유를 물어보자. 왜 수레가 다니지 않는가? 한마디로 선비와 벼슬아치의 잘못이다.” <열하일기>

    1897년경 <독립신문>을 읽어보면, 연암이 질타한 도로 사정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 무렵 한국을 방문한 서양 사람들에게 도로 사정은 끔찍했다. 1883년 조선에 온 미국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은 “조선의 길이 도로라는 이름조차 과분할 정도로 빈약하다”고 말했다. 영국의 이사벨라 비숍은 “여행자들이 도보여행이나 승마여행에 이용하는 길은, 보통 시간당 3마일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열악하다”고 기록했다. 1900년 러시아가 발행한 <한국지>에도 같은 평가다. “한반도의 북반부를 종횡으로 여행한 루벤초프는 한국과 같이 인구가 조밀한 나라에 국민생활의 동맥이 되는 도로가 이처럼 원시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한국 이외에는 찾아볼 수 없으리라고 하였다.”(인용문들은 박천홍의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에서 재인용)

    열악한 도로 상태는 낙후의 표시였다. 오늘날 도로 사정은 천양지차이다. 그런데 최근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도로 사정이 화제가 되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한 말이다. “평창 고속열차가 다 좋다고 하더라. 남측의 이런 환경에 있다가 북에 오면 참으로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 김정은 위원장의 솔직한 발언은 경제발전을 향한 간절한 희망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는 4·27 판문점 선언에 담겼다.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공동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 나가기로 하였다.”

    당장 서해안과 동해안, 그리고 비무장지대(DMZ)가 ‘H자’로 연결되는 ‘한반도 신경제 지도’ 구상이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서해안의 목포-수도권-개성공단-평양-신의주를 잇는 산업·물류 벨트, 동해안의 부산-강릉-원산-청진-나진을 잇는 에너지·자원 벨트, 그리고 비무장지대, 설악산·금강산 등의 관광벨트가 그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남한이 섬 아닌 섬의 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 경의선은 중국횡단철도와 연결되고, 동해선은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되어 저 멀리 유럽철도로 이어질 것이다. 그 효과는 크게 기대할 만하다. 물자가 원활하게 이동하여 경제적 효과가 상당할 것이다. 사람이 부산에서 런던까지 철길을 따라 여행하며 자유와 평화를 구가할 것이다.

    노태우 정부가 동구권 국가에 대해 북방정책으로 적극 대응한 것은 오늘날 높이 평가되고 있다. 평화는 번영을 가져다주고, 번영은 평화를 담보한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30년이 다 되어 가는데, 한반도에는 아직도 냉전의 유산인 분단체제라니.

    여름 한 철 사는 쓰르라미는 가을을 모른다. 그래도 계절은 바뀐다. 크고 작은 난관이 있고 뒷걸음질도 있겠지만 큰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 마침내 길은 다시 이어질 것이다. 언제쯤일까? 바로 이때다. 이때가 아니면 그 언제이겠느냐.

    김태희(다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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