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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네의 장날- 김달님 (공공미디어 단잠 기획팀장)

  • 기사입력 : 2018-05-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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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동네에 여섯 가구뿐인 산동네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자랐다. 면 소재지와 동네를 잇는 버스가 하루 세 대뿐이어서 학교 가는 날은 6시 40분에 동네를 지나는 첫차를 꼭 타야 했다.

    이른 아침 버스 안은 대개 한산했지만, 5일마다 돌아오는 장날은 달랐다. 버스에 올라타면 장사하러 나가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그들이 바리바리 챙겨 온 보자기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보자기엔 제철 채소와 산에서 난 약초들이 가득했고, 어느 날엔 수탉이 튀어나와 푸드덕 날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면 좋은 구경이 난 듯 다들 아이고야, 하며 깔깔 웃었다. 그중 울상인 사람은 나 하나였다. 입구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으면 처음 보는 할머니가 팔을 당겨 본인 무릎에 풀썩 앉히거나 푹신한 보따리 위에 앉게 했다. 괴로운 등교 시간이었다.

    장이 열리는 곳은 면 소재지의 정류장 인근이었다. 모든 버스의 도착지이자 출발지여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었다. 정해진 자리가 있는 것은 아니고 버스에서 내린 이들이 목 좋은 곳에 보따리를 펼치고 앉으면 바로 장사가 시작됐다. 장날엔 다른 동네에서 온 트럭도 여럿 볼 수 있었는데 그중 제일 반가운 것은 도넛과 꽈배기를 파는 트럭이었다. 장날의 반가운 소란과 생기가 기름 냄새와 함께 기억에 남아 있다.


    얼마 전 고향 집을 가는 길에 정류장 근처를 지나갔다. 마침 장날이었다. 어릴 적 본 장터 풍경과 비슷했지만 규모가 많이 작아져 있었다. 그중 유모차를 끌고 온 할머니들이 여럿 모여 있는 좌판이 있었다. 유심히 보니 40대 중반 돼 보이는 아주머니가 도마 위에 팔락이는 생선 대가리를 내려치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능숙하게 생선 배를 가르고 토막 내는 동안 할머니들이 구경난 듯 모여들었다. 여전히 산동네의 장날은 좋은 생선 구하는 귀한 날인가 보다.

    어릴 적 우리 집도 가끔 장에서 사 온 고등어와 갈치 같은 생선을 익혀만 먹었다. 집안의 식성 탓도 있겠지만, 여전히 날생선을 즐겨 먹지 않는 건 내가 바다와 먼 산동네에서 자랐기 때문 아닐까. 오래된 장터를 지나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달님 (공공미디어 단잠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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