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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요, 새마을호- 김달님(공공미디어 단잠 기획팀장)

  • 기사입력 : 2018-05-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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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적 서울에 살던 사촌동생과 3년 정도 함께 살았다. 내가 열두 살, 동생이 여덟 살 때였다. 이어폰을 만드는 공장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던 고모는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어린 아들을 경주에 있는 우리 집에 맡겼다. 고모의 삶은 늘 빠듯했지만 자신이 번 돈으로 자식에겐 더 나은 삶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동생 덕분에 방학이 되면 새마을호를 타고 서울에 갔다. KTX가 생기기 전, 새마을호는 서울로 가는 가장 빠른 열차였다. 산동네에 살던 내게 서울에 가는 일은 자랑이 됐다. 네 시간 반 동안 부지런히 달린 열차가 드디어 한강을 지나갈 때면 내 친구들 중 한강을 본 애들은 몇이나 될까 생각했다. 서울이 뭐라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서울엔 2주 정도 머물렀다. 고모는 속 깊고 정 많은 사람이었다. 일을 마친 고모가 집으로 돌아오면 가끔 외식을 하고, 주말엔 지하철을 타고 쇼핑몰이나 극장에 가는 게 전부였지만 동생만큼이나 나도 서울 고모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좋았다.

    경주로 돌아가는 날은 언제나 빠르게 왔다. 고모는 아침 일찍 우리를 역으로 데리고 갔다. 가는 길에 동생이 여기서 살면 안 되냐고 우는 바람에 고모에게 혼이 났다. 기가 죽은 동생과 나를 열차로 데려다주는 길에 고모는 동생 몰래 귓속말을 했다. 나중에 자신이 객실 밖으로 나가면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 동생이 창밖을 보지 못하게 하라고. 나는 왜냐고 묻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앉은 좌석을 꼼꼼히 확인한 고모는 동생에게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엄마, 가는 거 아니지?라고 묻는 동생에게 고모는 금방 돌아온다고 말했다. 고모가 떠나고 내가 동생의 시선을 잡아두는 사이 열차 출입문이 닫혔다. 금세 울상이 된 동생이 두리번거리다 창밖을 바라봤다. 멀리 가지 못한 고모가 창밖에 서있었다. 곧 열차가 떠나고, 창밖에 서 있던 고모가 작은 점이 돼 사라졌다.

    얼마 전, 새마을호가 운행을 종료했다는 뉴스를 봤다. 새마을호에 추억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마지막 운행을 마친 열차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나도 사람들을 따라 마지막 인사를 했다. 작은 점으로 사라지던 고모의 모습이 마음을 콕 찔렀다.

    김달님 (공공미디어 단잠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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