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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혁신을 혁신해야 하는 까닭- 이성모(문학평론가)

  • 기사입력 : 2019-01-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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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대한민국은 혁신공화국이다. 불편부당하여 공정했다고 믿었던 사법체계 농단에 대한 혁신, 후기자본주의에 치달을수록 극대화한 양극화에서 빚어진 불평등 불공정에 대한 혁신, 수구세력 이른바 보수이념에 대한 혁신, 더 나아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해왔던 제반 비리와 도덕적 해이에 대한 혁신, 그야말로 적폐 청산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사실 이러한 적폐는 오늘날의 일만이 아니라 정치의 출발점인 동시에 도달점으로서 양날의 칼처럼 무디거나 혹은 벼리거나 공존해왔다.

    역사는 본질적으로 청산해야 할 것과 청산되어서는 안 될 것에 대한 끝없는 투쟁과 대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의 상황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와 억압, 소외와 불평등을 청산하여 새로운 나라를 만들 것이라는 혁명적 이상주의에 치우칠 때이다.

    혁명적 이상주의는 지식인과 정치인에게 있어 천의 얼굴과 같다.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과도기적 상황의 모순투성이여서 삼제의 논리로 치달을 때, 이는 폭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혁명적 이상주의의 주체가 진정한 자기혁신과 염결성 없이 새로운 권력이 되어 개혁을 앞세운 동류 집단의 이익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쪽으로 치우치면 자기기만에 함몰된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문제의 근원을 찾아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고민하기보다 예언에 가까운 보랏빛 청사진, 혹은 여론의 향방을 좇아 ‘무엇을 할 것인가’에 휘둘리고 있다. 마치 곱사등이의 혹을 제거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인 듯하다. 사회의 한 국면이 볼썽사납다고 그것을 잘라버릴 때 야기되는 반대국면의 반작용으로 불거지는 본질적 현상을 예사롭게 지나치고 있다. 게다가 갈등과 반목과 대립은 어떻게 할 것이며, 조화와 이해와 화합의 길은 어떻게 할 것인가. 끝없는 오류의 도출, 그러한 긴장을 직시한 변증법적 통합을 향한 회의(懷疑)가 부재하고 있다.

    현상적 혁신만이 우리 시대의 꿈과 희망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이야말로 의도의 오류이다. 혁신은 본질적 절망과 만나는 자리에 있다. 좌절을 선고하는 처절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하는 자리가 혁신이다.

    대립과 모순을 물리쳐야 할 대상으로 삼아 거척하거나 건너뛰어야 할 것이 아니라, 부딪힘이며 변화를 향한 불가피한 노력으로 읽어내어야 비로소 난마처럼 얽힌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 혁신을 역설해 목적지에 달성했다고 믿을 때가 혁신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때이다. 일체의 혁신적 이상주의에 대한 반성과 성찰, 긴장과 어려움을 피해가기보다 해결해야 할 딜레마로서 접근할 때, 비로소 혁신의 추동력이 발휘될 터이다.

    칼 포퍼의 말처럼 혁신의 이론이 현실의 경험에 의해 언제든지 반증이 가능한 사회, 절대적 진리를 가정한 독단론에 앞서 개인주의가 다양하게 구현되는 사회에서의 온갖 오류 가능성을 인정함으로써 공감대를 전제로 점진적으로 개혁을 구현하는 가운데 “참상을 줄이고 불공정을 줄이고 악을 제거하는 데에 앞장서는 것”(K.포퍼,『추측과 논박』), ‘도 아니면 모’의 양극단의 둘로 치닫기보다 서로 여의지도 즉하지도 않는 이른바 ‘사이(間)’를 인식함으로써 만인에 의한, 만인을 위한, 만인의 공(公)을 체득한 연암 박지원. 그 누구보다 혁신적이었으나 궁극적으로 편벽되지 않은 성정과 조화를 설파해 ‘나’와 ‘남’이 공존하는 ‘사이’에서 살아남는 길은 혁신일 수 없는가.

    이성모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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