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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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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말의 상처- 김시탁(창원예총 회장)

  • 기사입력 : 2019-02-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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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의 고향은 따스하고 아늑할수록 정착하거나 세 들어 살기 좋다. 그곳에서 태어난 말은 어디에 시집을 보내도 그 언품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에는 차갑고 거칠고 뾰족한 말들이 많으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말을 대책 없이 함부로 하기 때문이다. 말이란 결 고운 질그릇에 오롯이 담긴 그 사람의 생각과 인품이다. 날다람쥐가 물을 찾는 청정계곡 돌미나리를 찬물에 씻어 물기를 말끔히 턴 뒤 대소쿠리에 가지런히 담은 듯 단정한 말을 식탁 위에 올리면 싱싱한 대화의 물꼬를 틀 것이고 허접쓰레기 잡것들을 놓으면 대화는 고사하고 악취를 풍겨 그릇마저 박살이 날 것이다.

    말은 입안에서 만들어져서 입술을 열고 나오기 때문에 혀를 굴릴 때부터 다듬어야 할 것이다. 뼈가 있는 말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니 잘게 씹어서 연하게 해야 한다. 말에 베인 상처는 날카롭고 깊어서 치유가 힘들 뿐더러 자주 도지고 전염성이 강해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일지라도 순식간에 수천 명의 귀로 들어가서 수만 명의 입으로 전해진다. 그러니 옛말에도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 말은 견고한 바퀴가 있어 굴러가길 좋아하는데 말이 굴러가는 길은 따로 없다. 골목이나 신작로 혹은 눈길이나 가시밭길 모래밭이나 똥밭 가리지 않는다. 어디를 굴러가든 말의 바퀴에는 이물질이 달라붙는다. 눈밭을 구르는 말은 자꾸 부풀려지고 가시밭길로 굴러간 말은 하염없이 상처를 입는다. 말 한마디의 여정이 이러하다면 세상에 토해내기 전에 얼마나 신중을 기해야 할까.

    말은 잘하는 것보다 진정성이 더 중요하다. 깊이나 무게가 없는 말은 황량한 가을날 들판을 가로질러 부는 바람에 날리는 풀씨와 같다. 말을 줄여도 가슴을 열어 보이면 그 사람 내면을 볼 수 있다. 미덥지 못한 말이나 욕이 될 여지가 있는 말은 설사 근육이 다 생겼더라도 입안에서 뱉지 말고 꿀컥 삼켜야 한다. 세상의 모든 말들은 곰탕국물처럼 끓으면 넘친다. 격한 감정의 원료로 제조된 말일수록 입안에서 펄펄 끓어 거품을 물며 넘치려고 안달한다. 대부분 그때 토해내는 말은 거칠어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기 십상이다. 저주와 지탄받는 말은 오랜 세월의 풍화에도 침식되지 않을 뿐더러 도리어 새끼를 치고 살이 붙어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만신창이가 되어 다시 주인에게 돌아간다.

    말에는 각도가 있고 색깔이 있고 온도가 있다. 피부와 근육과 맵시가 있고 뒤태가 있다. 숙성되고 정제된 말의 적당한 온도는 체온보다 조금 높고 아기 분유 타기에 가장 좋은 40도를 유지한다. 후후 불지 않고 그냥 마셔도 입천장이 데지 않는 부담 없는 말이다. 그런 말의 피부는 부드럽고 맵시는 단정하며 라인이 고운 뒤태는 각도조차 아름다워 만인이 품고 싶은 대상이다.

    지난 일이지만 창원시설공단 이사장의 간부회의 석상 막말 파문이나 “목포는 호구다”며 목포 시민들 가슴에 염장을 내질렀던 국회의원을 우리는 기억한다. 또한 최근에는 여당 국회의원 비서가 국회 본청 앞에서 분신을 시도한 60대 남성을 두고 ‘통구이’라는 망언으로 공분을 사서 사직처리됐다. 다들 자기 말의 파편에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말씀 언(言) 자에 작대기가 네 개 있고 입 구(口) 자가 있는 것은 입으로 말하기 전 적어도 네 번 생각하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필자 역시 말실수의 말뚝에 걸려 넘어지는 일들이 두려워 침묵의 하중과 가치를 믿으며 야생에서 방생될 말의 목을 지그시 누르고 있다.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라 했다.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김시탁 (창원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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