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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한일 평화의 사도가 된 사야가 장군- 하강돈((사)비화가야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기사입력 : 2019-07-15 20: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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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 휘하의 사야가(沙也可) 장군은 가재도구를 이고지고 피란하는 조선인들의 행렬 가운데 노모를 업고 힘들게 모시는 효심을 보고는, 도요토미의 명분 없는 전쟁은 하늘의 뜻을 거스른 처사라고 탄식하면서 조선 출병 7일 만에 휘하 군사 3000명을 이끌고 조선군에 투항하면서 조총 제조 및 사격술을 훈련시키고 화약 제조기술도 가르쳤다.

    일본군의 조총부대장으로 출병하여 조선군의 조총부대장이 되어 왜군에게 빼앗긴 울산성 외 18개 성을 탈환함으로써 임란을 승리로 이끈 주역의 한 명인 그가 귀화조선인 김충선(金忠善) 장군이다. 그는 평소 ‘충예의지국’으로 알려진 조선을 동경하고 흠모하던 차에 22세의 나이에 도요토미의 명을 받고 참전은 했으나 일본이 조선에 대한 불의의 침략임을 알고 있었던 바 조선이라는 나라는 의관문물과 예의지풍이 뛰어난 나라라 차제에 귀의하여 장래 한일 간의 평화의 사도가 되어 평생을 헌신할 것을 의중에 결단함으로써 조선의 사직이 위태로움을 알고 칼날을 돌려 왜적을 크게 무찔렀던 것이다. 그 공을 높이 산 선조 임금은 성(姓)과 이름을 하사하고 자헌대부의 관직을 내렸다.

    이괄의난, 병자호란 등 풍전등화 같은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삼란공신 김충선 장군은 북방오랑캐와 이미 화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춘추대의는 이제 끝났다 하며 낙향하여 충효정신을 가르치다 인조 20년 향년 72세로 세상을 하직했다. 그가 영면에 든 지 200년이 지나 삼남의 유생들이 삼란공적의 은가(恩加)를 상소함으로써 그가 여생을 보낸 경북 가창에 녹동사(鹿洞祠)를 짓고 매년 음력 중정(中丁)일에 유림향례를 지내고 있다.

    최근 일본의 아베 정부는 전략물자 수출통제라는 초유의 카드를 실행하는 것도 모자라 국제사회를 향해 거짓 조작뉴스를 보도하는가 하면 나라간 중요한 협의회를 하면서 상대국의 외교관을 홀대하는 등 선진국가로서의 비양심적인 경거망동을 서슴지 않고 있다. 차제에 우리 국민들과 정치인은 냉정한 국제적 현실을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기 위해서라도 옛 우리 조상들의 춘추대의적 역사문화의식을 시급히 깨우쳐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하강돈((사)비화가야역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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