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2월 17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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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묘 미리, 차례 생략…설 풍속도 급변

생활방식·가치관 변화 추세로
예전 명절 풍습 점차 사라져
제수음식 안만들고 가게서 주문

  • 기사입력 : 2020-01-22 21:2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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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적 설 풍속도가 급변하고 있다.

    객지로 나갔던 가족이 모처럼만에 귀향, 한자리에 모여 차례(茶禮)를 지내고 성묘(省墓)를 하는 등 시끌벅적 했던 모습은 이제 과거 속에 박제되는 모양새다.

    자연물이나 인위물이나 다 생로병사를 거쳐 결국은 소멸의 길을 걷는다고는 하지만, 과거와 추억을 먹고 사는 기성세대로서는 미풍양속이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이런 변화를 환영하는 듯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설날 아침, 시골마을은 예외 없이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도시 사람들로 떠들썩했다. 종갓집 단위로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 후 음식을 나누는 모습은 일반적이었다. 널 뛰고 연 날리며 이웃과 훈훈한 정을 나누는 명절 분위기가 정월대보름까지 이어지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은 고조됐다.

    명절을 맞아 문중 재실에서 차례를 지내는 모습.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있다./경남신문DB/
    명절을 맞아 문중 재실에서 차례를 지내는 모습.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있다./경남신문DB/

    하지만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 적지 않은 가정에서 차례와 성묘를 생략하는 등 변화기류를 보이더니, 최근에는 대부분의 가정으로 일반화되는 모습이다. 가족회의를 통해 차례와 성묘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가 하면, 설 직전 휴일에 간단한 가족모임으로 설 모임을 대체하고 연휴를 이용해 해외나 국내로 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주류문화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명절에 준비하던 각종 전과 튀김 등의 명절 제수음식도 아예 가게에서 주문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사회학계에서는 산업 토대가 변하면서 초래되는 불가피한 현상으로 진단한다. 반면, 전통문화를 중시하는 유림(儒林)에서는 매우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급변하는 명절문화= #1. 김명숙(69·창원시 의창구)씨는 최근 몇 년 동안 자식들을 찾아 역귀성 행렬에 오르곤 했었다. 하지만 올해 설에는 그냥 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이미 지난 1일 자식들을 만나고 온 터라 이번에는 굳이 힘들게 서울로 가지 않기로 했다. 자식들 또한 힘들게 내려오지 말고 편하게 지낼 것을 권했다. 대신 이번에는 집에 찾아오는 손님, 그리고 교회 지인들과 조용하게 보내기로 했다.

    #2. 매년 부모님이 거주하는 진주에서 설을 보내던 이모(54)씨는 올해 설 연휴기간 국내 여행을 하기로 했다. 대신 휴일인 지난 18일 일가들이 진주에서 모여 설 모임을 대신한 외식 행사를 가졌다. 이씨는 “나이 드신 부모님께서 더 이상 차례음식 만들기도 힘들고 해마다 며느리에게 명절 부담을 주지 않으려 올해부터 설 명절을 같이 보내지 않기로 했다”며 “주변에 그렇게 하는 가족이 많다”고 괘념(掛念)치 말 것을 당부했다.

    #3. 함안에 사는 임모(75)씨는 몇 년 전부터 설 명절 때 고향인 함안에 자녀들이 찾아오는 것을 그만두게 했다. 대신 임씨는 거꾸로 큰아들이 사는 서울에서 명절을 보낸다. 임씨 내외만 움직이면 수도권에 사는 자녀 5남매가 몇시간씩 고생을 하며 함안으로 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4. 인터넷 지역 커뮤니티에서 한 누리꾼은 “설에 시댁에 안 갑니다. 제게도 이런 날이 왔네요”라며 “종가집 기제사에 명절 제사에 부담이었는데, 지난 추석에 데모(가족회의)를 해서 명절 제사를 없애고 기제사는 2번으로 축소했다. 이번에는 친정으로 가고 시댁에는 안 간다고 남편에 통보했다”고 사연을 공개했다.

    #5. 창원에 사는 이모(79)씨는 후손들이 조상 산소 찾는 일이 점점 줄어들자 날을 잡아 파묘( 破墓)를 해 화장 후 산골(散骨)을 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십수년 후 손자 세대에는 벌초나 묘사, 성묘문화가 없어질 것으로 판단하고, 집안어른인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조상의 유골을 자연으로 보내기로 결단을 내린 것이다.


    ◇학계 “산업화·개인주의 확산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 학계에서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급격한 전환, 그에 따른 개인주의 경향이 확산하면서 문중과 가족의 일체감을 강조하는 명절문화의 변화는 불가피한 것으로 진단한다.

    울산대학교 조형제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인 가구 비율이 늘다 보니 명절에 고향을 찾는 경향이 줄어드는 것 같다. 그리고 설에 비해 추석은 한 해의 결실을 맺는 가을에 있기에 더욱 중요시 하는 것 같다”며 “전통을 중요시하는 것이 최근 사람들 삶의 리듬에 비효율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전체적으로 개인의 생활을 중요시 여기고 인생을 즐기려고 하는 추세인데 설 문화의 변화는 이제 거스를 수는 없다”며 “생활 방식과 가치관이 바뀌어 가고 있는 흐름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유림 “전통을 가벼이 여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편 전통을 고수하는 유림들은 사라져 가는 설 명절의 풍습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창원향교 김혁래 전교는 “시대에 따라서 이런 모습들은 변화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조상을 제대로 모시려면 그날에 맞춰 참석하고 제를 지내는 것이 옳은 것 아닌가 싶다”며 “명절과 조상을 모시는 것에 대해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요즘 젊은 사람들은 명절이 그냥 노는 날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설이란 한 해가 바뀌면서 새해 들어 온 가족이 모여 덕담을 나누고 하는 참 좋은 전통인데 가볍게 생각하는 부분이 다소 아쉽다”고 말했다.

    결국 인간이 만든 모든 문화가 특정 시점에 생겨나 특정 시점에 소멸하게 되는 생로병사의 주기선상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면, 설 명절문화가 변하는 것도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해를 더하면서 어떻게 변해 갈지 궁금하다.

    이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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