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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과학적 사실과 잘못된 믿음- 김광기(인제대 보건대학원장)

  • 기사입력 : 2020-10-06 20:4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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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의학학술지 ‘란셋(Lancet)’에 실린 외국 학자들의 논문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음주라는 단일요인으로 한 해 동안(2016년)에 1만32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계되었다. 전체 여성 사망자의 2.2%, 남성 사망자의 6.8%가 음주 때문에 사망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지난 10개월 동안 사망한 사람은 421명이니 이보다 3배 이상 많은 숫자이다. 술은 구강암, 식도암, 인두암, 간암, 대장암, 직장암 및 유방암 발생의 원인이라는 것은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과학적 사실이다.

    이 두 가지 과학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음주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 사회의 대응은 매우 미미하다. 음주폐해예방 정책을 OECD 국가별로 비교한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30개국 중 22위였고 일년간 보건복지부에서 음주폐해 예방을 위해 사용한 예산은 14억원(2018년)에 불과했다. 이러니 우리 사회가 술 마시기 좋은 환경이 될 수밖에 없음을 절감할 수 있다. 일년에 1만3200명이 사망하는 원인인 음주에 대한 대책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문화적 믿음과 상업적 이해관계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본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일상생활에서 이를 누리고 있지만 음주에 관한 한 우리는 아직도 농경사회의 믿음을 가지고 있다. 농경사회에서 음주는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술 한 잔을 통해서 농사지을 에너지를 얻었고 협력적 노동을 하려면 함께 마시는 음주가 최고였다. 또한 음주는 공동체의 통합(축제와 제례에서 사용)과 사회적 윤활유(사람들 간의 정을 표현하는 수단)의 상징으로 규정되어 왔다. 음주는 일상생활의 필수요소가 되었으며 금주자, 특히 남성들에게 금주자는 사회적 낙오자로 취급될 정도로까지 음주는 미화되었다.

    이렇게 음주의 긍정적 측면이 문화적으로 확대되면서 음주에 관한 과학적 사실은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서구사회에서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쓰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희생하는 것이라는 개인적 믿음 때문에 마스크를 쓰지 않는 현상과 같다. 때때로 사람들은 과학적 사실보다는 문화적 믿음에 근거하여 행동을 한다. 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틀린 정보라고 하여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절대선’처럼 따른다. 그러다 자신의 생명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험에 빠지게까지 한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으로 이득을 보는 집단이 있으며, 이들은 과학적 사실보다 문화적 믿음이 계속 확대되도록 선동한다는 것이다. 음주문제에서도 그러하다.

    주류회사들은 음주에 관한 과학적 사실들을 부정하거나 그 영향을 축소하면서 잘못된 개인 믿음을 강화한다. 이것을 위해 주류회사는 일년에 5217억원(2019년)을 광고비로만 지출할 정도이다. 개인과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국회, 정부 등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음주에 대한 과학적 사실보다 개인적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 중에는 코로나19가 전 지구적 패닉을 가져올 정도로 그 폐해가 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사람들과 이를 조장하는 지도자를 둔 국가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 마스크 미착용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과학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잘못된 믿음 때문에 저렇게 행동한다고. 그것을 그냥 두는 국가는 무엇이냐고. 정작 우리는 술은 발암물질이고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보다 3배나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물질이라는 과학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믿음에 기대어 과학적 사실을 외면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우리는 이런 모순된 생각과 행동으로 술을 마시고 권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또한 이런 믿음을 확대 재생산하는 플랫폼을 방치하고 있는 당국과 지도자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김광기(인제대 보건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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