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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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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일반시민을 위한 법학- 정성헌(경남대 법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21-05-23 20: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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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에서 법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때때로 필자보다 나이도 많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한 인생의 선배들에게도 법을 가르치거나 함께 법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가끔 놀라는 것은 그분들 중 법을 전공하거나 제대로 배운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 법을 가르치는 필자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법적인’ 결론을 내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나름 법으로 먹고 사는 필자로서는 자못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는 전혀 이상하거나, 필자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다. 법은 사실 그 사회의 상식과 닿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 경험이 많을수록 그러한 상식에 대해 직·간접적인 경험과 통찰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이는 법에 대한 흔한, 예컨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와 같은 조소 섞인 인식과는 사뭇 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삶과 사회가 거의 모든 영역에서 법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법은 제법 상식적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삶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진작에 그 기능을 잃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가 바뀌었음에도 아직 법은 그대로라서, 아니면 지나치게 여러 가지 이익을 고려하다 보니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법은 대체로 상식에 닿아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해석을 통해, 혹은 개정을 통해 이를 수정해 나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법의 이와 같은 모습은 법학(혹은 법학 교육)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교롭게도 우리의 법학은 사회를 구성하는 상식으로서의 측면보다 보다 세부적이고 전문적인 영역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모습인데, 이는 종래 우리의 법학이 사법시험이라는 자격 시험을 전제로 이루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론 법이 가지는 전문적인 속성을 고려할 때 ‘법률 전문가를 위한 법학’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법이 이 사회를 구성하는 상식이라고 하면 ‘일반 시민을 위한 법학’이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이를 통해 법에 내재되어 있는 사회의 상식과, 사회문제를 바로 보는 균형 잡힌 시각과 판단력을 키워줘야 하는 것이 법학에게 요구되는 역할이 아닐까?

    이는 특히 종래의 사법시험이 없어지고, 전문 인력인 법조인의 양성이 법학전문대학원의 몫이 되어버린 현재에 더 큰 의미를 가진다. 그 동안 법학은 온전히 대학의 몫이었지만, 법학전문대학원의 출범 이후 어떤 대학은 의무적으로, 어떤 대학은 선택적으로 법학에서 손을 놓았다. 실제로 대학에서의 법학의 종말을 공공연히 예측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법조인 양성에 초점이 맞추어진 법학전문대학원만으로는 법학에게 요구되는 역할을 전부 감당할 수 없다. 그렇기에 특히 대학을 중심으로 한 법학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에서의 법학도 그 모습을 달리해야 한다. 시험을 전제로 너무 세부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모습에서 탈피하여 이 사회를 구성하는 상식을 공유하고, 올바른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주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법치의 실현과도 관련이 있다. 진정한 법치는 형식적인 법과 제도의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지만, 법에 대한 시민들의 올바른 이해와 실천이 전제되어야 한다. 인식하건 하지 못하건 항상 법과 함께 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모든 이들이 법의 그러한 모습을 알고, 이를 바탕으로 법적인 삶을 살아갔으면 한다. 그렇게 이 땅에도 법치가 하루빨리 온전히 뿌리내리기를 바란다. 제대로 된 법학은 법에 대한 시민들의 이해와 실천을 도와 법치의 실현에 기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의 대학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고도 크다고 할 것이다.

    정성헌(경남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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