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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9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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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 언제쯤 오나

[진단] 여전히 계속되는 ‘위험의 외주화’
김용균법·중대재해처벌법 제정돼도
적용범위 제한돼 근원적 차단엔 한계

  • 기사입력 : 2021-05-23 21: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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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자들은 “일하다 죽지 않는 세상은 언제쯤 오느냐”고 묻는다. 피해는 주로 하청업체에 집중되고 있다. 위험한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안전 장비를 갖추지 못하고, 안전 교육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안전 관리자도 없이 현장에 방치되다시피 내몰리고 있는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전국적으로 어버이날인 8일 하루에만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40대 하청업체 노동자가 용접 작업에 나섰다가 추락사하고,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혼자 설비를 점검하던 노동자가 기계에 끼인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또 지난달 22일 경기도의 평택항 부두에선 제대 후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려 아르바이트에 나선 20대 이선호씨가 화물 컨테이너 적재 작업을 하다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씨는 하청에 다시 하청을 받은 재하청 업체의 일용직이었다.

    이들의 죽음은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계약직 신분으로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 벨트를 홀로 점검하다 사고로 숨진 김용균씨를 떠올리게 한다. 그에 앞서 2016년 5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승강장의 스크린도어를 혼자 수리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김모군도 있었다. 공통점은 안전 장비나 교육 없이 현장에 투입되거나, 위험한 작업에 2인 1조가 아니라 혼자 투입됐다가 변을 당했다.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이 ‘누구에게나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 경종을 울렸지만 수년째 ‘위험의 외주화’는 그대로이고, 여전히 안전 관리도 보완된 것 없이 허술하다.

    특히 경남은 2017년 5월 삼성중공업 크레인 참사 등을 겪고도 노동 현장에서 산재 사망은 반복되며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탄식이 나온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 사고로 인한 사상자 31명은 전원 하청업체 직원이고 STX조선해양 폭발사고 희생자 4명도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조선업에서 대형 사상 사고들을 겪은 뒤 정부는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 참여 조사위원회’를 발족해 재하도급 금지 권고안을 채택하는 등 근원적 대책 마련을 약속했지만 정작 법제화나 현장 개선까지 이어지지 않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이번 근로자의 날에 삼성중공업 정문 앞에서 크레인 참사 4주기 추모 주간을 지냈다.

    이들은 “크레인 참사로 죽어간 노동자와 지금도 고통받는 노동자를 아프게 추모하고 기억하는 날”이라며 “4년 동안 노동자들은 여전히 죽음으로 내몰렸고 내몰리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자들은 “삼성중공업은 다단계 하청고용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그동안 일말의 노력이라도 해야 했다”며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 노동자의 죽음이 잇따르고 있다. 김용균법이라는 이름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개정되었지만 누더기법이 되고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이름에서 기업이 빠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노동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법이 됐다”고 호소했다. 이김춘택 지회 전략조직부장은 “조선소의 다단계 하청은 더 늘어나고 있다. 하청업체의 상용직인 본공을 중심으로 숙련된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 구조가 무너지면서 사고의 위험성도 더 커지고 있다”며 “회사에서 어떤 시스템을 갖추고 안전에 투자를 하더라도 미치는 범위는 1차 하청업체 정도이고 재하청으로 내려가면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산재 사망사고가 되풀이되는 동안 여러 입법이 있었다. 지난해 1월 16일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됐다. 법 개정은 ‘위험의 외주화’ 금지를 내세운 것과 달리 도금작업 등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으로 인정된 경우만 도급 불가 범위로 규정하고 있어 한계가 있었다. 민주노총은 “개정 산안법은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으로 정작 구의역 김군, 김용균, 조선하청 노동자들은 도급 금지에서 제외됐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내년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해 노동자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를 발생하게 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최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이 역시 산재 사고를 막기 역부족이라고 진단한다. 산재가 빈번한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적용 대상에서 제외한 데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법 시행 후 2년을 더 유예하기 때문이다.

    상당수 취약계층 노동자가 법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정부는 이르면 이달 중대재해처벌법의 세부 내용을 담은 시행령 제정안을 입법예고할 예정이다.

    이은주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상임 활동가는 “공장뿐 아니라 서비스직이든 어디든 다 아웃소싱되고 소규모로 위험이 외주화되어 발생하는 문제인데 중대재해처벌법조차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산재 예방을 위해서는 “노동자들에게 제도 하나 바뀌는 것은 현장에 당장 변화를 가져올 만큼의 것이 안 된다. 노동자들이 죽고 다치는 현실은 정의롭지 못하며,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은 확장되었지만 실제 개선으로 이어지기까지 간극이 크다”면서 “여전히 우리 사회는 생명 가치보다 이윤의 가치가 우선시 되어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문화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인식을 바꾸기 위한 방편으로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이 위험할 때 일을 멈출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 전국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12% 정도밖에 안 된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위험할 때 작업을 거부하고 안전을 요구할 권리를 가져야 하며 노동조합 조직을 통해 권리를 확장하고 보호받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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