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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설익은 지식인들의 시대를 살며- 김일태(시인)

  • 기사입력 : 2021-11-09 20: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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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소설 문학의 대작가 박경리 선생은 돌아가시기 전 필자가 기획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지식인의 부패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식인들의 부패는 스스로 자각 없이 근절되기 어렵다. 정치인들은 지식인들을 이용해 나쁜 짓 하고 지식인들은 정치인들에게 혜택을 조금 받고 그들이 살 수 있도록 물을 대준다. 칼은 요리하기도 하지만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걸 지식인들이 받아들여야 한다.” 비단 선생님의 말씀뿐이겠는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표현은 조금씩 다를지언정 ‘세상을 망치는 것은 지식인들’이라는 주장은 수없이 많다. 여기서 지칭하는 지식인이란 어설픈 자기 논리에 집착하는,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거나 얕은 지식에 기대어 자기 과시를 일삼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지식의 시대는 끝났다’라고 한다. 이제 지식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검색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요즘 우리 사회 전반에는 설익은 전문가들이 언론이나 개인 미디어를 통해 작은 지식을 과대하게 포장하여 사회를 제도하려는 언행들을 서슴지 않고 있어 사회적 혼란과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

    요즘 정치판을 두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적어도 필자 주변에서는 보지 못했다. 후보들의 자질에서도 그렇거니와 권력의 주변에서 어룽거리는 설익은 지식인들의 그림자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래지향적이고 생산적인 대안 제시보다 상대의 의견을 깔아뭉개거나 인격적 모독을 주기 위한 내용, 또 제 결점은 감추고 남의 결점만 들추거나 자신도 보잘것없는 처지이면서 남을 얕보고 비웃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가득 차 있다.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일방적 주장을 여과 없이 노출하는 언론을 이용해 끊임없이 말을 비틀고 거짓을 선동하여 진실을 덮어버리는 이런 논리를 지식인들은 무슨 대단한 책략인 양 충성 경쟁하듯 공급하고 나라 운영을 책임지려 나선 지도자들은 이를 과외로 배워 활용하는 작태가 온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본인들은 국민이 우매해서 속을 거라 여길지 모르나 모두의 눈에 훤히 보이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이런 가벼운 지식인들의 교활한 말장난을 선거전략으로 끌어들인 후보자들과 그들의 진영에서 연일 쏟아내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속고 속다 보니 우리는 요즘 ‘국에 데어 김칫 국물도 분다’라는 속담처럼 세상살이가 너무 피곤하다.

    동서고금을 통해 지혜의 첫걸음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아는 것이라 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의문을 품고 어리석은 자는 남들만 의심한다’ 했다. 아는 것과 지혜로운 것은 다르다. 지식은 그냥 아는 것이지만 지혜는 그 지식이 쌓여 오래 묵혀야 나온다고 했다. 우리는 많이 배운 이들을 지식인이라 부르고 그 지식을 쌓아 지혜로워진 사람을 지성인이라고 부른다.

    한자의 지혜를 담고 있는 지(智)는 아는 것(知)을 오래 검증하며 쌓아(日)야 하고, 그 과정에 사악한 마음이 스며들면 어리석을 치(痴)가 된다는 것이 선현들의 가르침이다. 지식인도 많은 지성의 과정을 거치면 지성인이 될 수 있다. 얕은 지식을 가졌더라도 지성의 과정을 거치면 분명히 우리 모두 존경하고 따를만한 지성인, 지도자, 지도층 인사가 되는 것이다. 반풍수가 집안 망치듯 권력의 주변에 있는 지식인들이 병들어 있으면 나라와 사회도 건강할 수 없고 그 고통은 국민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설익은 과일은 먹을 수 없고 설익은 곡식은 쭉정이일 뿐이다.

    신동엽 시인이 암울했던 시기 반 민주 불공정 세상을 향해 ‘껍데기는 가라’고 던졌던 시구가 새삼스러운 요즘이다. 지식인들에게 호소한다. 평생에 걸쳐 쌓아온 지식이 가치를 잃지 않도록 좀 더 지식의 깊이를 더해서 우리 모두 존경하고 본받을 수 있는 지성인으로 거듭나 요즘 같은 어려운 시대에 우리를 제대로 지도하고 이끌어 주기를 바란다. 가을 낙엽이 져가면서 던지는 순리와 상식에 대한 화두가 긴 여운을 남기는 시기이다.

    김일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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