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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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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여행의 인문학- 이상준(한울회계법인 대표 공인회계사)

  • 기사입력 : 2022-08-30 21: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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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1월 19일, 인천공항에 도착한 중국인 1번 확진자로부터 시작된 코로나19의 암흑 같은 터널이 3년이 돼간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세가 줄어들어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지침이 완화되고 있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약 3년간 억눌려 지냈던 답답함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여행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달러화 강세와 항공료 인상 등으로 여행 경비가 대폭 올랐지만 폭발적인 욕구 앞에서는 큰 장애물이 아닌 듯하다.

    여행은 인간 유전자에 새겨진 ‘이동’의 본능에 기인한다. 어디로든 움직여야 생존을 도모할 수 있었던 인류가 현대에 남긴 진화의 흔적이고 문화일지도 모른다.

    이탈리아 시인 페트라르카(1304~1374)는 여행에 대해 찬미하며 “인간의 우월한 사고 속에는 새로운 곳을 보고 싶어 하고 자꾸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어 하는 염원이 내재돼 있다”고 말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76)에는 ‘그랜드 투어’에 대한 이런 구절이 있다.

    “영국에는 젊은 사람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에 보내지 않고 그들을 외국에 여행시키는 것이 점점 하나의 습관으로 돼가고 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 여행을 통해 일반적으로 대단히 발전돼 귀국한다고 한다.”

    생텍쥐페리는 ‘인간의 대지’(1939)에서 “대지는 저 모든 책들보다 우리들에 관해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고 말한다.

    “독서는 머리로 떠나는 여행이고,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다!”는 말도 있다.

    공부의 효과는 철저한 예습과 복습이다. 어느 정도 사전지식이 있어야 의문도 생기는 법이다. 익숙하지 않은 곳은 그 자체로 신비스럽다. ‘희소성의 원칙’에서 벌써 반은 먹고 있다. 그에 더해 사전지식까지 겸비하면 보는 눈이 달라진다. 희귀한 경관에 더해 역사적 의미나 관련 지식이 오버랩 되면 그 감흥은 몇 배로 커진다. 바로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의 묘미다.

    여행은 비용이 많이 드는 삶의 이벤트다. 금전뿐만 아니라 시간도 허락돼야 가능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여행 후기나 여행지에서 보내온 소식에서 담아둘 만한 지식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어디를 여행하고 있으며 뭐가 아름다우며 버킷리스트 몇 번째의 여행지다 등의 멘트와 함께 온갖 현란한 포즈로 찍은 사진이 전부다. 댓글도 딱 두 종류다. 하나는 ‘부럽다, 좋겠다’ ‘나도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다’와 같은 감탄형이다. 다른 하나는 ‘나도 몇 년 전에 그길 다녀왔는데(…)’와 같은 ‘자랑질’(?)이다.

    유명 작가들이 여행에서 얻은 경험을 통해 일취월장한 사연들을 ‘문득(文得) 여행’이란 제목의 책으로 펴낸 전원경 작가는 이렇게 일갈한다. “대부분의 여행기는 감탄기·자랑기·자기식대로 즐기기다. 예쁜 사진 속 여행자들은 언제나 유럽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문화인이 된 것처럼 뿌듯하게 웃으며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이런 여행기들은 언제나 우리의 염장을 지른다”

    1953년 5월 29일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등반한 에드먼드 힐러리(1919~2008)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정복하는 것은 산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다”

    ‘2012년 (고교) 졸업 축하 연설’이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널리 퍼지며 일약 유명세를 탄 미국 교사 데이비드 매컬로(David McCullough, Jr.)는 연설의 말미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여러분은 자기 깃발을 꽂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전을 받아들이기 위해, 즉 공기를 즐기고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산에 오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보기 위해 오르는 것이지, 세상이 여러분을 보도록 하기 위해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파리에 머물기 위해 파리에 가는 것이지, 여러분이 작성한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Bucket List)’ 목록에서 파리 여행 항목을 지워버리고 자신의 속물근성을 축하하기 위해 가는 것은 아닙니다”

    풍경을 느끼고 사유하는 시간을 빼앗기고 셀카 찍느라 뒤통수만 호강시켜서야 되겠는가.

    이상준(한울회계법인 대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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