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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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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해맞이- 박서현(경남문인협회 사무처장시인)

  • 기사입력 : 2023-01-01 19: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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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해 망운산으로 일출 여행을 다녀왔던 기억이 있다. 언제부터였는지 연말연시가 되면 해맞이 일출을 보기 위해 산으로 강으로 또는 바다로 떠나는 차량이 긴 행렬로 이어진다. 이 해맞이 행렬이 새해맞이의 새로운 풍속도로 굳혀진 느낌이다. 한 해를 출발하는 새로운 희망과 설렘, 기대감에 찬 마음은 여느 때보다 더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일출(日出)의 사전적 뜻은 ‘해가 뜸’, ‘해돋이’이다. 그해 날씨는 유난히 추웠고, 바람이 한 치도 침범하지 못하게 몸을 에워쌌다. 평소 입지 않던 내의까지 껴입고 목수건을 두르고 패딩을 옷 위에 덮어 입었으니 추위에 대비한 옷차림은 그야말로 완전무장이었다. 그것은 산정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동안 추위를 이기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해돋이 전망대에는 먼저 온 사람들이 희망의 속삭임으로 웅성거렸다. 어떤 이는 해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앞으로 꼬꾸라질 것처럼 까치발을 딛고 섰다. 그들은 해를 기다리는 동안 새해라는 켄버스 위에 신성한 기도의 목록을 연필로 적었을 것이다. 상황은 다 다르겠지만, 다양한 기도와 이루어야 할 꿈의 순서를 다독이며 두 손을 모았을 것이다. 라이너마리아 릴케 ‘말테의 수기’가 떠오른다.

    “말테야, 너는 소원을 비는 것을 잊지 마라, 소원을 비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돼, 당장 이루어지길 기대할 수 없는 그런 소원도 있어.”

    청년 말테가 번민에 잠겨 있을 때 떠올린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 준 말이었다. 그 후 청년의 소원은 하나씩 소리 없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소원은 염원이기도 하다. 올망졸망 솟아오른 남해의 작은 섬처럼 기도와 염원은 제각각의 캡슐을 찾아서 새해 벽두부터 하나씩 열려갈 것이다. 사람들이 빼곡하게 웅크린 채 해를 기다릴 동안 동녘이 불그스레 물들고 있었다. 먼바다 수평선 위로 천천히 솟아오르는 일출은 만상의 축복이었고 금빛 환호였다. 산우들의 숙연한 모습은 기도의 불씨가 되어 바다 저 멀리까지 힘차게 번져갔다. 그들은 누굴 위해서 이 혹한에, 땅끝에서 해를 안고 서 있는 것일까.

    2023년 계묘년을 맞아 모든 이가 가장 이루고 싶은 소원 하나씩 꼭 이루기를 기도한다.

    박서현(경남문인협회 사무처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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