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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음식을 나누는 것의 의미- 김대군(경상국립대 윤리교육과 교수)

  • 기사입력 : 2023-01-31 19: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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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날을 맞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명절 음식을 나누어 먹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여서 안부를 묻고 설음식들을 즐긴다. 떡국을 올리고 차례를 지내면서 이전에 식사를 함께했던 이승을 떠난 사람들을 추억하고 음식을 나눠 먹기도 한다.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일 때도 설날만큼은 배가 거북할 정도로 이 집 저 집 세배간 집에서 내놓은 음식으로 포만감이 사라지지 않았었다.

    올 설에도 음식만큼은 넘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무료 급식소에 의지하는 노인들과 노숙자들은 유달리 배고픈 설을 보냈다고 한다. 설맞이 행사로 무료급식 봉사를 뜻깊게 한 곳도 있지만, 예년과 달리 올해는 무료급식소에 설날 음식이 부족했다 한다. 가래떡 후원이 끊기거나 줄고, 김치 기부도 적었고, 고기 후원이 없어서 국에 고기를 얹어서 끓일 수도 없었다고 한다. 독거노인과 노숙자들은 수가 늘었는데 후원은 그대로이거나 줄어들었고, 반찬 값은 오르니 음식을 나누는 무료급식소를 이어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음식을 나누는 것은 단순히 물질을 제공하는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요즘은 우리 사회도 개인주의화 되면서 홀로 음식을 먹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공동체를 중시하던 시절에는 당연히 음식은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이었다. 가족들의 식사도 부득이한 일이 없다면 모두 모일 때를 기다려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이 일상이었다. 음식은 영양공급을 넘어서서 함께 나누어 먹는 사람들을 우리 의식(We-feeling)으로 묶어내는 역할을 해왔다.

    영어권의 어원으로 보면 음식이 갖는 의미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동반자, 친구, 짝이란 뜻을 가진 꼼빠니아(compania)는 com(함께)과 pania(빵, 음식)가 더해진 말이다. 나라마다 스펠링이 조금씩 다른 companion(영어), companera(스페인), companhia(포르투갈), compagnon(프랑스)으로 쓰이고 있지만 빵을 함께 한다는 어원을 그대로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음식을 함께 하는 사람이 동반자이고 친구이고 이웃이고 같이 일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배고픈지를 알고 내가 밥을 먹었는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바로 부모형제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듯이 맛있는 음식을 만났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콩유과를 먹다가 할머니께 사다 드려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면 할머니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우리는 꼼빠니아가 되는 것이다.

    마주 보고 살아도 음식이 오고 가지 않으면 꼼빠니아가 되기 어렵다. 아파트 1층과 끝층에 떨어져 살아도 음식을 함께 하면 꼼빠니아가 된다. 그래서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으면 음식을 함께 하면 관계가 살아난다. 한 집에 사는 데도 빈 조개껍데기 속에 사는 가족(空貝家族)처럼 공허하다면 우선 음식을 함께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음식을 나누고 함께 하는 것이 묵은 적도 새 친구로 만드는 마법을 건다는 것이다.

    어느 틈에 우리 사회도 나 혼자 먹는 것이 편한 세상이 온 것 같다. 설날이면 쏟아지던 가래떡 후원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듯이 나눠 먹고 함께 먹어야 한다는 의식이 희박해지고 있는 것이다. 흔히 따뜻한 사회라고 말하는 것은 배고픔을 공동의 적으로 알고 나눠 먹고 함께 먹는 사회를 말한다.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 사회로 나아가더라도 온기를 잃지 않으려면 음식을 나눠 먹고 함께 먹는 의미는 새겨둬야 한다. 홀로 먹는 자유를 누리는 사이에 남의 배고픔에 무관심하게 되면 꼼빠니아를 잃게 되는 것이다. 노숙자, 독거노인의 배고픔에 대한 무관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홀로 먹는 익숙함으로 어느 틈에 부모, 형제, 친구의 배고픔에도 무관심해지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 밥 먹었냐는 인사를 하고 연말연시에 라면박스가 쏟아지는 현재의 우리 사회의 음식 나누기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김대군(경상국립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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