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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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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등 - 이정록

  • 기사입력 : 2023-03-03 15: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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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만 가려워도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있다

    첫애 업었을 때

    아기 입술이 닿았던 곳이다

    새근새근 새털 같은 콧김으로

    내 젖은 흙을 말리던 곳이다

    아기가 자라

    어딘가에서 홧김을 내뿜을 때마다

    등짝은 오그라드는 것이다

    까치발을 딛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손차양하고 멀리 내다본다

    오래도록 햇살을 업어보지만

    얼음이 잡히는 북쪽 언덕이 있다

    언 입술 오물거리는

    약숟가락만 한 응달이 있다

    ☞등이 가려울 때가 있다. 온몸을 비틀어 양손을 최대한 꺾어도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있다. 등의 오지(奧地)로 매번 손끝이 놓치는 곳이다. 내 의지대로 되지 않은 것, 바로 자식 농사가 그렇다. 한때 그곳은 업은 아기의 입술이, 잠든 아기의 콧김이 새겨진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디선가 자식이 내 뿜는 홧김이 느껴질 때면 심장은 물론이고 부모는 등짝까지 오그라드는 것이다.

    자식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멈춰지지가 않는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수많은 불면의 밤을 보내는 이유다. 때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때론 마음 차양을 하고 멀리 내다보는 것이다. 끝끝내 약숟가락만 한 응달로 살아 내는 것이다.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같이 전화벨이 울리면 간이 콩알만 해진다는 그 응달! 어쩌면 자식들이 잠시라도 평안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인지도 모른다. 시간인지도 모른다. 천융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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