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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19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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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세 라상호 사진가의 꿈의 여정 ④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만난 예술과 젊음

가슴 뛰는 탱고 열정, 가슴 벅찬 낭만 예술
남미 문화예술의 보물창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시가지가 정원·조각 전시장 같은 매력 도시

  • 기사입력 : 2023-03-21 13:35:30
  •   
  • 3월10일

    긴 마지막 항해는 끝났다. 항해 중 인내를 배웠고 많은 사람들의 천천한 마지막 여행도, 그리고 비틀거리며 사는 일도 보았다. 남극을 유영하며 다닌 크루즈 여행, 내겐 이런저런 많은 사연들로 남을 것 같다. 큰 배는 닻을 내려 정박했고, 나는 이제 다시 시작이다.

    땅고 뽀르떼니오 공연장서 열린 탱고 공연.
    땅고 뽀르떼니오 공연장서 열린 탱고 공연.

    3월11일

    라틴 아메리카의 현대문화예술 보석창고 같은 곳, 예술적 낭만으로 탱고가 가슴을 뛰게하는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부에노 까사 한인민박에 찾아들었다. 1년 전부터 연락을 취해 왔던 터라 오랜 지인같은 익숙함에 나도 놀랐다. 이곳에는 친절함과 따뜻함이 뚝뚝 묻어나 좋았다.

    별세계 같았지만 춥고 고단했던 지난 여정 탓일까. 그저 지금이 편안하다. 사람마다 자기 옷이 있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된다.

    많은 역사와 사연을 간직한 아르헨티나. 슬픈 소외계층의 비통을 노래한 마술적 리얼리즘의 작품들,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먼저 대통령 궁과 국회의사당, 잘 정돈된 시가지의 건축 모습이 놀라웠다. 과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옛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나는 아르헨티나의 탱고와 벽화의 사연을 담고 싶었다. 정원같은 도시. 지천이 조각전시장과 같은 매력있는 도시다. 다만 63년만의 폭염이라는 무더위를 만났다. 벌써 37도씨, 체감온도가 40도에 달했지만 젊은이들은 움직임은 활기차다. 내일은 콜론 대극장을 찾아갈 것이다.

    세계 3대 극장인 ‘콜론 대극장’.
    세계 3대 극장인 ‘콜론 대극장’.

    세계 3대 극장인 ‘콜론 대극장’.
    세계 3대 극장인 ‘콜론 대극장’.

    3월12일

    아침 일찌감치 콜론 대극장을 찾아 극장 투어 티켓을 예매했다. 지금 괴테의 파우스트를 공연하고 있지만 미리 예매하지 않은 탓에 공연 표를 구하기는 어려웠다. 극장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는 투어라도 예약할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 여긴다. 오후 3시에 다시 오란 말에 말바(Malva) 현대미술관을 먼저 찾았다. 그저 책이나 인터넷 자료로만 보고 알았던 진품들이, 이곳에 생생히 살아있었다. 볼 수 있다고 기대했던 많은 작품들을 감상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라틴 아메리카 예술 흐름을 짚고 사실주의 작가들이 그린 작품들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언젠간 한 번 이곳 작품들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우리 창동 예술촌 작가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많은 작품을 사진에 담아왔다.

    3시에 다시 찾은 콜론 대극장은 압도 그 자체였다. 감탄사만 나올 뿐이었다. 대리석 설계 규모와 자연 대리석간의 색의 조화, 세계 3대 극장이라는 명성 그대로였다. 중앙무대에는 ‘괴테 파우스트’ 공연을 위한 무대가 서 있었다. 조금 더 여정이 길었다면 어떻게든 표를 구해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냥 지나쳐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한낮동안 예술적 영감을 풍족하게 받으며 행복했다. 저녁무렵 보까 까마니또 예술의 거리를 다시 찾고,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에서 위로를 받고 숙소로 돌아왔다.

    색색의 벽화로 가득한 보까 까마니또 예술의 거리.
    색색의 벽화로 가득한 보까 까마니또 예술의 거리.
    오페라 극장을 개조해서 만든 세계 최대의 서점 ‘엘 아테네오(El Ateneo Grand Splendid)’.
    오페라 극장을 개조해서 만든 세계 최대의 서점 ‘엘 아테네오(El Ateneo Grand Splendid)’.

    3월13일

    오늘은 벼룩시장이 열리는 날이다. 각종 볼거리와 먹거리, 골동품들이 길게 늘어서있다.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오전인데도 발디딜 틈이 없다. 이같은 여행 정보들은 아르헨티나 곳곳의 지식을 갖고 있는 손민수님의 도움 덕분이었다. 이민 1세대 후예로 36년 전 이곳으로 이민을 온 그는 여행가로 많은 도움을 주셨다.

    저녁엔 서둘러 한인민박집 ‘부에나 까사’로 돌아왔다. 민박집에서 만나 너데끼를 함께한 젊은 배낭객들과 얘기를 나누기로 했기 때문이다. 여행길에서 귀한 인연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부에노 까사에서 만난 나은영씨와 김하림씨.
    부에노 까사에서 만난 나은영씨와 김하림씨.

    나은영(30)씨는 별명이 ‘나답게’란다 건축 설계사로 일하는데 4년여를 근무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을 받아 떠나온 길이라고 했다. ‘나다운 꿈’을 찾기 위해서라고 했다. 대학 시절부터 나는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었고 나답게 살고 싶었다고 했다. 그 꿈 중에 첫번째가 한 달 유럽살기, 두번째가 아이슬란드 오로라 만나기, 세 번째가 남미 즐기기인데 이번 여행을 통해 여행기를 남겨 독립출판물로 내는 것이 목표라고 얘기해줬다.

    김하림(28)씨는 치과에서 5년간 근무하고 두 번째 여행을 떠나온 것이라 했다. 사진 여행이 꿈이라는 말이 솔깃하다. 자신을 위한 정직한 투자가 하고 싶고, 자신감을 가지고 성취의 기쁨을 만끽하고 싶다고 했다. 매사가 여유롭지 않지만 그것은 여행을 멈추는 큰 이유일 수가 없다는 당찬 젊은이의 이야기에 박수를 보냈다.

    이들의 꿈이 이뤄지기를 소원한다. 나도 꿈을 찾아서 서성이고 있고, 꿈을 찾아 이곳으로 훌쩍 떠나온 것이니 족히 이해된다. 땀 흘리며 힘들고, 무거운 짐을 드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꿈이 그 모든 걸 아무렇지 않게 만드는 걸 오늘도 깨닫는다. 내일은 볼리비아로 떠난다.

    화려한 쎄멘떼리오 데 라 레꼴레따(Cementerio de la Recoleta) 묘소.
    화려한 쎄멘떼리오 데 라 레꼴레따(Cementerio de la Recoleta) 묘소.

    화려한 쎄멘떼리오 데 라 레꼴레따(Cementerio de la Recoleta) 묘소 내 ‘에비타 에바 패론’ 의 묘. 아르헨티나 대통령 영부인의 삶을 살았지만 화려한 조각 건축 사이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 옆에 초라하게 잠들어 있다.
    화려한 쎄멘떼리오 데 라 레꼴레따(Cementerio de la Recoleta) 묘소 내 ‘에비타 에바 패론’ 의 묘. 아르헨티나 대통령 영부인의 삶을 살았지만 화려한 조각 건축 사이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 옆에 초라하게 잠들어 있다.

    떠나기 전 포근한 휴식처가 돼 준 부에노 까사 서세미 대표를 만났다. 여기서 서 대표님의 남편 박성환씨와 이곳에서 선장으로 근무하고 계신 김창환님과 함께 맥주를 마셨다. 김 선장님은 부산 출신으로 경남신문도 잘 알고 있었다. 서 대표는 11살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과 함께 아르헨티나에 이민을 와서 지내고 있다고 했다. 수산회사와 선원 상남, 무역업도 했으나 11년 전부터는 직접 집을 수리해 여행자의 편한 쉼터 부에나 까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들만의 아픈 기억도 있었으나 이제는 행복하다고 했다. 박성환씨의 건강도 좋아졌으며 두 자녀 모두 착해 고맙다고 했다. 미지의 세계를 찾는 젊은이들에게 쉴 곳이 되어주고 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공간을 잘 가꾸어 나가겠다 했다.

    라상호 사진가.
    라상호 사진가.

    창동예술촌 입주작가·창동갤러리 관장

    정리= 이슬기 기자 good@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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