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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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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영웅-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 기사입력 : 2023-05-23 19: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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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웅’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가장 먼저 누구를 떠올릴까.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소개되는 인물들? 카이사르나 알렉산드로스? 혹은 칭기즈칸이나 나폴레옹 같은 이름들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는 그 ‘영웅’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사전을 찾아보면 ‘지혜와 재능이 뛰어나고 용맹하여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저들이 이런 설명에 해당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겠다. 그러나 보통 우리는 이런 사전적 의미 이전에 그냥 대충 ‘대단한 사람’ ‘훌륭한 사람’ 정도로 생각한다. 돋보여 주목을 끄는 사람이다.

    철학자 헤겔이 말한 ‘세계사적 개인’도 결국 ‘영웅’이라는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좋다. 보통사람과 다른 뭔가 특별한 일을 해낸 대단한 사람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대단한 사람이 곧 훌륭한 사람일까? 그건 좀 다르다. 우리가 어린 시절 별 의심 없이 영웅시했던 저들도 기실 그 삶의 내용을 보면 권력자 내지 정복자였다. 대체로 무력으로 영토를 넓힌 왕들이었다. 어쩌면 저 고구려의 광개토/호태왕도 중국의 한무제도 일본의 히데요시도 그런 부류다.

    이런 카테고리에 아마 대부분의 ‘영웅’들이 포함될 것이다. 어쩌면 저 히틀러나 일본 ‘텐노’나 레닌도 한때 어디선가는 그런 ‘영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안다. 그런 사람들이 더 이상 ‘훌륭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소위 영웅이 되는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의 규모와 고통을 생각하면 그들은 영웅이기커녕 오히려 그 정반대에 해당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이 ‘영웅’에 대해 재검토를 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대단하면서도 훌륭한 사람을 주목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어떤 특별한 의미에서 특별한 사람이, 특히 가치있는 어떤 일을 해낸 사람이 진정한 영웅으로 평가받고 찬양되어야 하는 것이다.

    할리우드식 영웅은 사실상 기대난망이다.

    슈퍼맨이든 스파이더맨이든 소위 ‘어벤져스’는 스크린 밖의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들은 그저 그것을 만든 이들에게 돈을 벌어다주는 영웅일 뿐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영웅은 어디에 있는 어떤 사람들일까. 하나의 가능성은 저 ‘악한 무력’ 내지 ‘문제적 현실’에 대항해 사람들을 그 구렁텅이에서 건져낸 구원자들이다. 그렇게 보면 떠오르는 이름들이 많다. 부처와 예수가 대표적이다. 차원은 다르지만 이순신도 안중근도 해당한다. 세종도 당연히 포함된다. 이런 건 일종의 평가이고 거기엔 당연히 ‘기준’이라는 게 작용한다.

    누군가는 여기에 ‘이승만, 박정희,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 …’ 등의 이름을 넣고 싶을 것이고, 누군가는 여기에 ‘김구, 김대중, 노무현, 전태일 …’ 등의 이름을 넣고 싶을 것이다. 이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사르트르 식으로 말하자면 결국은 실존적 선택의 문제가 된다. 물론 그 선택에는 역사적 책임이 뒤따른다. 역사의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2020년대 초라는 이 시대에는 ‘푸틴’이라는 이름이 사방에서 시끄럽다. 러시아 일부에서는 그도 아마 ‘영웅’일 것이다. 그런데 어떤가. 그는 영웅일까? 그의 곁에는 또 다른 섬짓한 이름도 몇 개 함께 있다.

    우리는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선택해야 한다. 당신의 가슴속에는 지금 어떤 이름이 시대의 하늘에 영웅이라는 별로 떠서 반짝이는가. 그 별을 쳐다보는 당신의 그 눈은 이 시대에 대해, 이 시대의 만백성들에게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역사의 흐름은 지금 엄청난 위세로 마치 홍수처럼 넘실대며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굽이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제대로 방향키를 잡아줄 진정한 영웅을 기다리고 있다. 푸틴과 그의 붉은 친구들이 그 답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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