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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 기자의 우리동네 해결사] (7) 이주 시급한 진해 수치·죽곡마을 주민

국가산단에 발목 잡힌 30년… 서서히 죽어간 조선소 옆 마을

  • 기사입력 : 2023-09-11 20:3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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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 진해 수치·죽곡마을 어땠나

    주변 조선소서 날아든 쇳가루에 주민 피해 호소
    2000년대 환경실태조사서 ‘주거기능 상실’ 결론
    마을 일대 진해국가산단 포함… 보상·이주 추진


    1990년대. 마창진환경운동연합은 창원 진해의 죽곡마을을 찾았습니다. 당시 환경운동가들이 손에 자석을 들고 마을 곳곳에 갖다 대자, 주변 조선소에서 날아든 쇳가루가 시커멓게 달라붙었죠. 마을이 온통 쇳가루 투성이란 사실을 주민들이 육안으로 처음 확인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주민들이 마을회관 옥상에서 자석을 들고 쇳가루를 모았더니 플라스틱 통이 가득 담길 정도였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조선소와 인접한 수치·죽곡마을 주민들이 중금속 가루 피해는 물론 악취와 소음 등에 시달리고 있다며 환경 피해를 호소했습니다. 이후 2000년대 전문적인 환경실태조사에서 ‘주거 기능 상실로 이주 대책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주거지 일대는 진해국가산업단지에 포함이 되고, 주민들에 대한 보상 및 이주가 추진되면서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했죠. 그러나 30년 가까이 현재까지 두 마을 주민들은 여전히 이주가 이뤄지지 않은 채, 더욱 열악해진 주거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동네 해결사’는 주민들의 이주가 시급한 수치·죽곡마을을 찾아 심층 취재했습니다.

    창원시 진해구 죽곡동 죽곡마을 전경. 케이조선과 맞닿은 죽곡마을은 왕복 4차선 도로를 기준으로 두 동강 났다.
    창원시 진해구 죽곡동 죽곡마을 전경. 케이조선과 맞닿은 죽곡마을은 왕복 4차선 도로를 기준으로 두 동강 났다.

    평화롭던 마을이 국가산단에 지정되는 것은 ‘날벼락’ 같은 일이었습니다. 창원시 진해구 원포동 수치마을에서 만난 곽학실(72)씨의 말입니다. “사업시행자인 조선사에선 주민들에게 감언이설을 했죠. 살던 집과 어업권을 보상해주겠다고 하고 이주를 시켜주겠다고 했습니다. 주민들에게 마을은 원래부터 살기 좋은 곳이었는데 말이죠. 저는 보상금이 얼마 되지도 않아서 나중에 한꺼번에 받기로 했는데, 부분 보상이 이뤄지자 주민들 하나둘 마을을 떠났습니다. 그때부터 빈집이 주변에 널렸습니다.”


    현재 두 마을의 상황은

    STX조선, 2016년 법정관리로 이주사업 중단 뒤
    192가구 중 100가구 남짓 보상액 50% 받아
    부분 보상 이뤄지자 주민들 하나둘 마을 떠나


    진해국가산업단지는 ㈜케이조선과 오리엔탈정공,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을 사업시행자로 하며, 창원시 진해구 원포동·죽곡동·남양동·명동 일원 육지 186만㎡와 해면부 140만㎡ 등 총 326만㎡ 면적이 지정됐습니다. 지난 1982년 12월 진해산업기지개발구역 지정을 시작으로 2008년 STX조선해양(현 케이조선)이 수치·죽곡마을을 모두 편입기로 하는 등 국가산단 지정 변경 승인을 받았죠.

    수치·죽곡마을은 각각 케이조선 서쪽과 동쪽에 맞닿아 있습니다. 국가산단 326만㎡ 가운데 케이조선 지정 면적이 160만㎡로 산단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160만㎡ 가운데 준공한 면적은 70만㎡ 정도로 파악됩니다.

    옛 STX조선해양은 애초 2012년 이주단지 조성계획을 세운 뒤 2015년 준공할 계획이었습니다. 이에 수치·죽곡마을 주민들에 대한 일부 보상 및 이주단지 개발 보상 절차가 진행됐지만, 2016년 5월 경영난을 겪던 회사가 법정관리 절차에 들어가면서 사업이 전면 중단됐습니다. STX조선해양은 2021년 새로운 경영진이 인수해 케이조선으로 사명을 바꿨는데요. 이주단지 조성계획은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현재 케이조선의 이주단지 조성계획은 수치·죽곡마을 주민 192가구 479명과 회사 기숙사 110가구가 이주 가능한 13만1212㎡ 규모 이주단지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주민 이주 절차는 토지와 건물을 매입해 보상하고 이주단지의 택지를 일반 분양가보다 상대적으로 싸게 분양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취재 결과, 케이조선에선 수치·죽곡마을 주민 192가구 중 100가구 남짓 보상이 됐지만, 보상받은 이들도 보상액의 50% 정도만 받은 거로 추정됩니다.

    조선소에선 두 마을 주민들에 대한 보상과 이주단지 개발 보상 등을 위해 750억~850억원가량 들 것으로 예상하는데, 현재까지 두 마을의 주민들에게 보상된 금액은 250억원가량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주가 지연되는 사이 주민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누군가는 ‘끝이 보이지 않는 감옥살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주할 때 한꺼번에 보상을 받겠다며 한 푼도 받지 못한 주민이 있는 반면, 먼저 부분 보상을 받은 주민도 있습니다. 주민들의 고통은 매한가지였습니다. 주민들에 대한 부분 보상이 이뤄진 시기는 대략 2011년 감정평가를 거쳐 2014~2015년 지급된 거로 추측됩니다. 이때도 계획보다 늦어져 2017년쯤 이주를 완료할 계획이었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언제쯤 이주가 가능할지 기약도 없는 상황입니다.

    “사람들이 떠난 마을에 남아 이주할 날만을 기다리는 심정을 아시겠습니까?”

    수치마을의 최헌관(67) 통장의 말입니다. 그는 슈퍼마켓과 집이 있는 2층 건물에 대해 감정평가액의 54%를 보상받은 뒤 마을을 떠나지도 못하고 아직 가게를 운영 중입니다. 슈퍼 주변으로 횟집 11곳 중 10곳은 문을 닫고 1곳만 남은 것으로 전해졌는데요.

    또 죽곡동 죽곡마을에 살고 있으며, 아직 보상을 받지 않은 김모(80)씨. “마을이 다 죽어버렸잖소. 인자는 다 떠나서 만날 사람도 없습니다. 창살 없는 감옥살이인기라….”

    또 다른 죽곡마을 주민 조모(63)씨. “사람이라면 모두가 돈을 받으면 쓰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얼마라도 보상된 것이 이주가 지연되면서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어요. 저와 주변에는 모두 보상금 52%가량을 받아 다 쓰고 벌써 없습니다. 남은 48%를 보상받아 택지를 사고 나면, 집이라도 지을 돈이 없다는 게 제일 큰 문제입니다.”


    [우리동네.Ssul] 마을은 두 동강 나고 환경실태조사서 ‘주거기능 상실’, 도대체 이주는 언제?


    이주 문제, 이제는 해법 찾아야

    삶의 터전 못 버린 주민 ‘창살 없는 감옥살이’
    박춘덕 도의원, 국가산단 해제 등 대안 제시
    케이조선 “이주단지 포함 산단 조성 마무리할 것”


    진해구 원포동 수치마을 풍경.
    진해구 원포동 수치마을 풍경.

    이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할 시간입니다.

    수치마을과 죽곡마을 이주 문제에 대해선 박춘덕 경남도의원이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박 의원은 최근 이 문제를 다시 지적하며 조속한 산단 조성 완료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대안으로는 시행사 변경이나 국가산단 해제, 해양관광 특화 비즈니스 단지 조성 등도 제시했는데요.

    박 의원은 취재진과 만나 “수십 년간 방치상태와 다름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이게 수치·죽곡만의 문제는 아니고 대한민국 전체 산단 조성할 때의 문제다. 이주부터 해주고 산단이 들어와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데가 많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박 의원은 “산단 지정 시 주민과 마찰이 우려되는 부분은 선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기업에 일임해서 산단을 조성하는 업체이니 주민 민원을 안고 가라는 식으로 하다 보니 재정 여력이 좋아서 회사가 잘 돌아가면 투자 계획에 따라 하다가, 회사가 어려워지니 보상절차가 중단되는 문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단 케이조선은 더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주단지를 포함한 산단 조성을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케이조선 관계자는 “산단 철회를 하는 것은 법정관리 시절 검토를 했었지만, 주민들이 원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해제하는 것도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시일은 많이 지연되고 있는데 회사는 원래대로 개발을 하려고 한다. 이주단지는 내년까지 매입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같은 케이조선의 방침에 따라 창원시도 국가산단 해제 절차를 밟기보다는 잘 준공될 수 있게 행정적 지원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행히 케이조선에 수주가 늘어나는 등 업황이 나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다만, 회사 안팎으로 경영 상황 등도 고려해야 해 주민 보상 등 산단 준공 시기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말들도 나옵니다. 수치·죽곡이주대책위원회는 케이조선 정문 근처에 하고 싶은 말을 담은 현수막을 내걸고 있습니다. ‘주민 고통 눈을 감고 기업 이익만 챙기는 케이조선은 주민에게 사죄하고 이주 대책 제시하라.’

    지난달 25일 케이조선 정문 인근 교차로에 수치·죽곡이주대책위원회가 내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지난달 25일 케이조선 정문 인근 교차로에 수치·죽곡이주대책위원회가 내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취재수첩

    1. 진해 수치·죽곡마을 주민들의 이주 문제와 별개로 환경 피해에 대해 과거 보상이 이뤄졌다고. 그러나 여태 기약 없이 이주가 미뤄짐에 따라 주민들은 다시금 이주하는 날까지 환경 피해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며 케이조선과 협의에 나서고 있음.

    2. 케이조선은 과거 주민들에 대한 부분 보상 시기와 이주 시기가 차이가 나다 보니 주민들이 ‘돈을 다 썼다’고 토로하는 등 고충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고. 보상이 모두 이뤄졌을 때 실제 이주에 어려움이 있는 주민이 발생하는지 여부는 지켜봐야 할 듯.

    글= 김재경 기자·사진= 이솔희 V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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