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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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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발달장애인 ‘집 밖으로 나서는 길’ ④ 스웨덴 발달장애인의 하루

‘삶의 결정’ 스스로 하고 ‘삶의 결점’ 돌봄으로 채운다

  • 기사입력 : 2023-10-17 08: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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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웨덴 LSS법 통해 ‘24시 돌봄’ 실현
    필요에 따라 24시간 활동 보조 지원
    유형별로 2~3명 복수 지원사 투입되기도

    지적장애 마리아, 아파트에 혼자 살고
    뇌병변 장애 아이작, 가족과 독립된 삶
    모두 주간활동센터 출근해 임금 받아

    공동주택 형태의 그룹홈·서비스아파트 등
    일반 주거지서 다양한 형태로 ‘자립’
    직원 상주하며 장애인 돌봄 서비스 제공

    저녁에 장애인 단체가 연 댄스 파티
    장애인·비장애인 구분 없이 함께 어울려
    만나고 춤추고 사랑하는 ‘당연한 삶’

    삶은 언제나 결정의 연속이다. 밥을 먹을지, 밖으로 나갈지, 친구를 만날지, 집에서 휴식을 취할지. 당연한 권리이지만 ‘장애’가 있다면 원하는 결정을 실현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기에 스웨덴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같은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누릴 수 있게 만든다. 그것이 삶의 기본이기에.

    스웨덴은 이를 위해 장애인의 일상과 활동부터 자립에 이르는 상세한 지원책을 펴냈다. 스웨덴에서 성인 발달장애인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결정할까. 그들의 일상 속에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뇌병변 장애인 아이작씨가 AAC(대체 의사소통) 기계로 가족과 소통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뇌병변 장애인 아이작씨가 AAC(대체 의사소통) 기계로 가족과 소통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자신의 결정을 이룰 수 있는 환경= 자기 결정권을 행사함에 있어 ‘장애’가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는 기본 정책은 ‘활동 보조’다.

    스웨덴 스톡홀름 솔나시에 거주하는 마리아(Maria Olofsdotter·40)씨는 4번 염색체 단완결실 증후군(Wolf-Hirschhorn 증후군)으로 지적장애를 가지게 됐다. 정신연령은 1~2살 가량으로 스스로 걷기 힘들고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지만, 40년을 살아오면서 다양한 경험이 쌓여 행동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표현할 정도가 된다. 하루 24시간 보조가 필요한 마리아씨에게는 세 명의 활동 보조사가 시간에 따라 번갈아가거나 혹은 활동에 따라 2명 이상이 함께 보조한다.

    지체 장애와 지적 장애가 함께 동반한 뇌병변 장애인인 아이작(Isacc Lagerman·24)씨 또한 활동 보조사의 보조를 받고 있다. 그는 낮 시간 주간활동센터에 출근하는 것 이외 모든 시간에서 활동 보조 서비스를 이용한다. 여기에 하루 5시간은 활동 보조사 두 명이 투입될 수 있다. 활동 보조사는 아이작씨의 기본 일상생활과 활동 전반을 보조하고 AAC(대체 의사소통) 기계를 통한 의사소통도 돕는다. 아이작과 함께 살고 있는 어머니 테레사(Therese Lagerman·57)씨는 “활동 보조 서비스로 인해 가족의 삶과 아들의 삶이 구분된다”며 “활동 보조사가 있기에 아이작은 시설에 들어가지 않고 자립해 자신의 집에서 살 수 있다”고 얘기했다.

    마리아씨와 아이작씨는 모두 낮 시간 주간활동센터로 ‘출근’한다. 한국의 주간활동센터와 비슷한 시스템이지만 이용하면 바우처가 차감되는 한국과 달리 스웨덴에서는 이를 장애인의 직장 개념으로 보고 있다. 출근과 같이 센터를 방문하고 일정시간 활동을 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소정의 임금이 주어진다. 이 서비스는 성인 발달 장애인이라면 모두 이용하고 있다.

    지적 장애를 가진 마리아씨가 집에서 활동보조사가 챙겨준 식사를 하고 있다.
    지적 장애를 가진 마리아씨가 집에서 활동보조사가 챙겨준 식사를 하고 있다.

    ◇자립이란 온전한 ‘나’를 가지는 것=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아이작씨는 빠른 시일내 자립을 생각하고 있다. 테레사씨는 지체장애가 있는 이용자에게 환경적인 인프라가 마련된 장애인 맞춤 아파트의 입주를 희망하고 있는데, 신청하고서 2년은 기다려야 해서 고민이 많다. 마침 아이작씨가 여자친구와 친구가 함께 사는 형태를 원하고 있기에 테레사씨는 자신의 집을 아들에게 렌트하는 것도 선택지에 넣었다. 테레사씨의 집은 이미 지자체 지원을 통해 휠체어 리프트, 엘리베이터 등이 모두 구비돼 있기 때문이다. 아이작씨는 “집을 나와 혼자 살게 되는 것이 매우 기대된다”고 말했다.

    마리아씨는 지난 2013년부터 혼자 아파트에 살고 있다. 당시 부모와 같은 아파트, 다른 층에 살았지만 2015년에는 지금의 솔나시로 이사를 하면서 부모와 멀어졌다. 현재 아파트는 마리아씨의 이름으로 매입하고 대출금은 그의 주택수당으로 지급하고 있다. 스웨덴은 장애인에게 주택수당을 통해 주거비용의 93%를 지원한다.

    주간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온 마리아씨는 활동 보조사인 아네트(Annette)씨가 준비한 샌드위치로 저녁식사를 한다. 아네트씨는 마리아씨가 좋아하는 만화 음악을 틀고 마리아씨의 표현에 따라 화장실을 보내기도, 재활기구에 서는 것을 돕기도 했다. 그는 마리아씨가 현관문으로 나오자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나와 산책을 나섰다.

    마리아씨의 거실과 방의 벽면은 그가 가진 추억으로 가득하다. 아이슬란드를 여행했을 때의 사진과 패달 없는 자전거 경기를 나가 받은 메달, 주간활동센터에서 그렸던 미술작품이 액자에 걸려 있다. 마리아씨의 어머니 잉마리(Ing-marie Olofsdotter·65)씨는 딸을 바라보며 자립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다. 마리아씨는 지난 2001년, 성인이 된 18살에 여러 명의 장애인이 함께 거주하는 그룹홈 형태로 처음 자립을 시작했다.

    2011년에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하면서 그룹홈도 바꾸게 됐는데, 그곳에 문제가 있었다. 잉마리씨는 “딸이 활동적이고 사람과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교적인 성격인데, 그룹홈을 옮기고부터 우울해하기 시작했다”며 “알아보니 시설이 좋지 않았다. 직원들이 스케줄표를 짜서 거주자들이 계획대로 따르게끔 만들었다. 시설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잉마리씨는 딸을 그룹홈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 급하게 집을 구했다. ‘온전한 자신의 공간’을 가진 이후부터 딸은 다시 밝은 모습을 되찾았다. 그는 “독립은 삶의 선택권이 생긴다는 것”이라며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살아야 ‘온전한 자신’을 가지게 된다. 그것이 행복이다”고 얘기했다.

    ◇‘24시간 돌봄’ 스웨덴에 있다= 스웨덴의 장애인이 활동 보조 서비스를 통해 일상을 장애 없이 보내고, 지원을 받아 자립을 할 수 있는 모든 근거는 LSS법(스웨덴 장애인지원·서비스법)에 있다. LSS법에는 활동 보조를 비롯해 레저와 문화활동 등을 돕는 동반자 서비스, 장애인 일상활동(장애인보호작업장과 주간활동센터 등), 성인을 대상으로 특수 서비스나 장치가 제공되는 주택, 그룹홈 지원과 서비스아파트 등 크게 10가지 서비스가 포함된다.

    특히 활동 보조 급여는 지적장애나 자폐증이 있거나 신체·정신에 장애가 있어 일상생활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대상이 수급한다. 스웨덴은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하는데 있어 보조가 일주일에 20시간 이상 필요하다면 중증장애인으로 판단하고 있다.

    장애 당사자가 개별 서비스를 신청하면 지자체가 심사해 시간을 최종 결정하는데, 상세한 일상생활에 필요한 시간과 취미와 여가활동을 위한 시간까지도 분 단위로 세세하게 판단해 결정한다. 유아기에는 ‘부모가 돌볼 수 있는 시간’도 파악하지만 11~12세가 되면 독립적인 인격체로 판단, 활동 보조 시간이 대폭 늘어난다.

    이후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활동 보조사를 고용하고 활동 보조를 이용한 시간에 따라 급여를 수급받는다. 활동 보조사 역할을 부모가 맡아 급여를 받는 것도 가능하다.

    주거 또한 다양한 형태로 구성된다. 크게 혼자 독립된 주거지에서 사는 개인가정, 집단으로 거주하며 활동을 보조할 직원이 상주하는 그룹홈, 개인가정과 같이 독립된 형태로 살지만 근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원이 상주하는 서비스홈이 있다.

    이 중 그룹홈은 중증 발달장애인의 거주 형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스웨덴의 그룹홈은 한 집에 여러 명이 사는 형태가 아니라, 개인이 살고 있는 집이 붙어 있는 공동주택의 형태다. 이곳에 발달장애인 5명가량이 지내는데, 활동 보조 직원 4~5명도 함께 상주하고 있어 장애인의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돕게 된다. 활동 보조 시간에 관해서는 지자체와 협의한 급여에 따른다.

    서비스홈은 언어적 소통이나 거동이 가능한 일반적으로 경증 발달장애인이 주로 거주하는데, 대부분 2명에 1명꼴로 이들을 도울 직원이 있다. 그러나 이 ‘도움’은 그룹홈과 형태가 다르다. 스톡홀름의 한 서비스아파트에서 근무하는 알페이디(Ing-marie Alpadie·58)씨는 “전화를 통해 그들이 해야 할 일. 그러니까 기상해서 출근을 하거나 병원을 가는 스케줄을 상기시켜 주고 같이 마트를 가거나 산책을 하면서 사회활동을 하게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룹홈, 서비스홈은 스웨덴 사회에 넓게 산별해 있다. 장애인 주거지는 일정거리 이내에 붙어있어선 안 된다. 서비스아파트 또한 비장애인이 거주하는 일반 아파트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같은 사회에 섞여 살아갈 수 있도록 조치한 정책의 결과다.

    FUB(스웨덴 지적 장애인 협회)가 진행한 댄스 파티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춤을 추고 있다.
    FUB(스웨덴 지적 장애인 협회)가 진행한 댄스 파티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춤을 추고 있다.

    ◇춤추고 사랑하고= 저녁에는 장애인들을 위한 특별한 파티가 열렸다. FUB(스웨덴 지적 장애인 협회)가 주최한 댄스파티다. 지난달 22일 열린 파티에는 마리아씨를 포함해 발달장애인과 그들을 돕는 활동 보조사와 부모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FUB는 지난 2003년부터 댄스파티를 열고 있다. 처음에는 몇몇 장애인 부모들이 ‘아이들도 즐길 수 있는 파티를 만들자’고 시작한 것이 점점 커져서, 유명 밴드가 온 날에는 1000명이 참여한 날도 있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보통 700명이 참여했지만 코로나 이후인 요즈음에는 300명 전후로 참여한다. FUB의 자원봉사자인 미아(Mia)씨는 “FUB에서는 볼링이나 스포츠 행사, 파티 등 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열고 있다”며 “장애인 또한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제약 없이 활동하며, 사람들과 함께 하는 행복을 느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무대 위에는 초청된 밴드가 연신 음악을 연주하고 그 앞으로 장애인들이 흥겹게 몸을 흔든다. 비장애인들도 댄스 대열에 함께한다. 흥겨운 음악 속에서 다정하게 서로를 껴안고 춤을 추는 귀여운 연인도 보인다. 발달장애인도 취미를 즐기고,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한다. 당연하지만 이제야 알았다.

    글·사진= 어태희 기자 ttott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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