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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어미 판다 이야기- 최국진 (한국폴리텍Ⅶ대학 창원캠퍼스 교수)

  • 기사입력 : 2023-11-21 21: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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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국진 한국폴리텍Ⅶ대학 창원캠퍼스 교수

    공처가니, 애처가니 굳이 구분해가며 아내한테 잡혀 사는 걸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게 포장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표현을 쓸 필요도 없이 아내가 대두분의 주도권을 갖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가 되었다.

    우리 부부도 삼십 년이 다 되어 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시대적 흐름에 적응되어 웬만한 상황은 내가 다 따라주는 편이다. 그래도 한 번씩 정말 억울한 때도 있기는 하다. 사는 곳이 시 외곽이라 자주 차를 타고 시내로 이동하는데, 어느 날 내가 차를 몰면서 미처 방지턱을 못 보고 지나치며 귀하신 아내가 충격을 받게 했다. 당연히 운전도 똑바로 못하냐는 핀잔을 받고 곧바로 공손히 미안하다고 해서 조용히 넘어갔다. 다음 날 똑같은 차를 타고 똑같은 자리의 방지턱을 못 보고 지나치며 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달라진 것은 운전자가 내가 아닌 아내라는 것이다. 충격에 깜짝 놀란 나는 아내를 바라보며 눈으로만 심하게 항의하고 있는데,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아내의 말이 걸작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곳에 이렇게 높은 방지턱을 설치한 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본인도 민망했는지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고 어이없어하던 나도 웃고 말았다.

    부부 사이에도 이렇게 같은 상황에서 서로의 생각과 언행이 다르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다. 하물며, 서로가 남남인 경우에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러다 보니, 우리는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서도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그 사람의 잘잘못을 단정 지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상황을 아주 잘 표현한 것으로 어미 판다 이야기가 있는데 요즘 시대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어미 판다 한 마리가 있었다. 평상시에는 다른 동물들과 잘 어울리며 별다른 문제가 없는 평범한 판다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상하게 눈만 내리면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나무 위로 올라가 이틀이고 사흘이고 눈이 그칠 때까지 내려오지 않는 것이었다. 당연히 다른 동물들은 그런 판다를 두고 자신들의 기준대로 판단하여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그런 동물들에게 판다의 사정을 알고 있는 토끼가 말한다. “너희들은 너희가 이해하는 것만 이해하려고 하지. 판다의 상처도 모르면서 말이야.” 그러면서 얼마 전 있었던 판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전해준다. 어미 판다는 얼마 전 눈 위에 찍힌 자신의 발자국을 따라온 사냥꾼들에게 생명보다 소중한 새끼 두 마리를 잃었다고. 그 후로 어미 판다는 눈만 내리면 나무 위로 올라가 먹지도 않은 채 눈이 그치기만을 기다린다고.

    사실 우리 주변에는 어미 판다처럼 말 못 할 사정으로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나의 기준으로만 그 사람의 행동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해 버린다. 필자도 매년 학과에 120여 명의 신입생이 들어오면 최대한 학생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가끔은 어미 판다 같은 학생들을 놓치곤 한다.

    자주 지각하고 수업 시간에 졸기도 하는 학생을 보면서, 학생으로서의 태도가 덜 되었다고 단정 짓고는 신경을 덜 쓰게 된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난 후, 출석을 부르다가 갑자기 휴학한 사실을 알게 되고, 다른 학생을 통해 듣게 된 사실은 어미 판다와 다르지 않다. 어려운 집안 사정에 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들게 학업을 이어오다 더는 학업에 집중할 형편이 못 돼 휴학을 택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또 한 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며 왜 좀 더 그 학생의 입장을 헤아려보지 않았을까 자책하고, 좀 더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세상이 점점 서로에게 간섭하기 싫어하는 개인주의로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살아야 한다. 진정한 소통은 나의 기준을 버리고, 상대방과 입장을 바꿔보고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최국진 (한국폴리텍Ⅶ대학 창원캠퍼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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