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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에세이] 입말을 방해하는 붉은 줄- 최미선(동화작가,1993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 기사입력 : 2023-11-23 20:3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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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미선 (동화작가1993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신춘문예의 계절이 왔다. 도하 각 일간지에 신춘문예 응모 사고(社告)가 깃발처럼 나부낀다. 마감 일자, 응모 분야, 원고 분량. 고정된 글자들의 나열이건만, 신춘문예 사고(社告)만큼 보는 이의 가슴 떨리게 하는 문구가 또 있을까. 1년을, 아니 어쩌면 온 시간을 송두리째 쏟아부으며 이를 준비해 온 지상의 모든 문청(文靑)들은 이 공고문에서 말하는 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을 터이지만, 낡아지도록 읽고 또 읽고 할 거다. 모르긴 몰라도 봄꽃이 산천을 다 뒤덮을 때도, 태양이 작열하는 계절에도 오직 이때를 목표로 걷고 또 걸어 왔으리라.

    문필을 전업으로 하는 이른바 시인, 소설가는 우리나라 직업 통계에서 소득순위가 거의 바닥을 점하는 직업군으로 나타난 지는 이미 오래다. 그럼에도 가난을 목표로 하고 글을 쓰겠다는 맑은 정신의 문학 지망생들이 여전하다는 것은 겨울 차 한잔처럼 따듯한 위안이기도 하지만, 입맛이 씁쓸한 건 무슨 이유인가.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마감을 앞두고 문장 한 줄, 토씨 하나, 문장 부호 하나까지 점검으로 눈을 밝히고 있으리라.

    컴퓨터에서 글쓰기가 일반화되면서 보다 자유분방한 창작을 방해하는 것으로는 문장에 가해지는 붉은 언더라인이다. 문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거나, 표준어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입말에는 여지없이 붉은 밑줄이 선명하게 칠해지는 건,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다양한 입말은 글맛을 더해줄 뿐만 아니라 글쓴이의 개성을 드러내는 문체의 기능도 한다. 하지만 한글 워드프로세서에서 글쓰기를 할 때, 표준화되지 않은 어휘에는 붉은 줄이 주홍글씨처럼 여지없이 자국을 드러내고야 마는 것이다.

    소설가 이효석은 이국적 취향을 추구하는 모더니스트였음에도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에서는 풍부한 입말과 토속어로 자신만의 문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입말을 잘 살려 쓰기로는 합천 출신의 향파 이주홍을 빼놓을 수 없다. 1930년 4월에 발표된 ‘청어 뼉다귀’에서 그의 언어 구사력은 독특하다. 향파는 여기서 경상도 사람들의 말법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작가 의식을 깨알처럼 발휘한다. 이미 아는 것처럼 경상도 사람은 ‘ㅓ’와 ‘ㅡ’를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쩌면 구분하지 못한다는 말이 맞을 거다. 이러한 특성을 향파는 소설 문장에서 그대로 구현하고 있는데, 순덕이의 부모가 순덕이를 호명하는 대화문에서는 ‘순득’으로 표기하고 있다. 발표 당시의 이런 깨알 재미는 근래에 발행된 작품집에서는 모두 말끔한 현대어로 정리되어 버렸다. 발표 당시의 작가 의도가 사라져 버려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자유자재의 입말은 작가의 문체적 특성을 형성하는 요소가 된다. 박경리 소설가의 걸작에서 구사되는 경상도 말은 소설이 문자가 아니라 삶이라는 걸 그대로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입말은 우리의 언어 영역을 다양하게 하면서 생각의 폭을 확장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최미선(동화작가,1993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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