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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외로운 고백은 누가 듣나- 희석 (작가, 독립출판사 발코니 대표)

  • 기사입력 : 2023-11-24 0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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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슬픔을 책에서 고백한 뒤부터 비슷한 고백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많이 받았어요. 모두가 각자의 불행이나 슬픔을 편하게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꾸준히 여러분께 슬픔을 고백할게요.”

    지난 주말, ‘섹시한 슬라임이 되고 싶어’를 쓴 연정 작가의 북토크에서 작가가 했던 말이다. 작가는 책을 통해 자신의 우울과 상처를 조금씩 내보였고, 그에 답하듯 독자들의 편지가 이어졌다고 한다. 나의 슬픔에 공감해줄 사람이 귀한 시절인 만큼, 독자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작가에게 자신의 고백을 전했다. 독자들의 연령대는 다양했지만, 주로 청년층이었다. 그렇다. 청년들은 지금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외로움에 대해 생각한다. 단지 내 곁에 인간이라는 존재가 없다고 해서 외로운 것은 아니다. 인간이 있든 없든 우리는 누구나 외로울 수 있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것 같을 때, 우리의 외로움은 자란다. 누군가 입을 틀어막지도,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입이 열리지 않을 때. 그런 때가 갈수록 늘어가면 외로움은 자란다.

    이 외로움은 이른바 ‘독거노인’으로 불리는 고령층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은둔 청년, 고립 청년, 그리고 청년 자살.

    인구 대비 자살률이 부동의 1위인 한국이지만, 그중 특히나 청년층의 자살률이 심각하다. 90년대생, 00년대생들이 사망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이들은 놀랄 것이다. “아니 젊고 활기찬 나이에 대체 왜?” 청년은 젊고 활기찰 것이라는 그 인식이 지금의 자살률을 만드는 데 한몫했다.

    청년이라고 해서 항상 기운 넘치고 사람 사귀길 즐기며, 펄펄 끓어오르는 열정을 품고 있지는 않다. 우리 사회가 만든 ‘청년’ 이미지는 사실 허상이다.

    표면적으로 가장 활기차 보이는 사람들, 그 사람 중 좀 젊은 사람을 묶어서 ‘나라의 미래’라며 보기 흐뭇해하지 않았는지 한국 사회는 반성해야 한다.

    청년 중에서도 아프고, 고립되고, 외로운 사람이 많다. 각종 미디어와 생활 속에서 다들 “오 청년! 젊음! 청춘!”을 외칠 때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사회가 규정하는 청년 이미지에 해당되지 않으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존재는 없다고, 이 모든 아픔은 나의 탓이며 나 혼자 해결해야 한다고 말이다. 단념의 끝은 대개 어둡다.

    주말에 자신의 고백에 대해 말한 연정 작가는 1994년생이다. 그의 고백이 울림을 준 이유에는 따뜻한 문장과 단어 때문도 있겠지만, ‘나의 또래’라는 점 역시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세상이 다들 앞으로 나아갈 나이라고 하는데, 도저히 그리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고 있을 때 다가온 또래 작가의 고백은 꽤 의미 있지 않았을까. 독자 한 분, 한 분께 직접 여쭤보진 못했지만 이런 이유가 없진 않았을 것이다.

    지역 청년은 특히나 더 외롭다. 삶의 터전이었던 고향에는 먹고 살아갈 길이 희박해졌고, 기회의 땅이라 불리는 저 먼 서울로 가기엔 현실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모두가 외로운 시대에 더 외로운 청년들이 지금 우리 주변 곳곳에 살아간다. 이 청년들이 고백하는 외로움을 진심을 다해 들어줄 사람은 과연 우리 지역에 존재하는가. 기대할 만한 대답은 오래도록 나오지 않고 있다.

    희석 (작가, 독립출판사 발코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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