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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생활양식의 변화와 지역의 문화자산- 조정우(경남대학교사회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23-12-19 19:4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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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은 급격한 사회변동을 겪어 왔다. 정치적·경제적 변동만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 또한 미처 적응할 시간도 없이 빠른 속도로 변화해 가고 있다. 조부모 세대, 부모 세대, 자녀 세대의 생활양식이 너무나 달라져 앞 세대의 경험·지식·문화는 지나간 것, 낡은 것으로 취급되기 일쑤이다. 하지만 예전의 것은 사람들의 기억에서든, 신문이나 책에 문자로든, 혹은 어떤 공간에 건물이나 장소의 형태로든 언제나 흔적을 남긴다. 요즘 관광여행의 한 방식으로 유행하고 있는 ‘레트로풍’은 이 흔적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어렴풋한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보고 또 앞으로의 미래를 상상해 보는 문화적 행위가 아닐까 한다.

    한국인의 생활양식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했던 것의 하나로 목욕탕을 꼽을 수 있다. 거주주택에 방수 처리된 샤워 시설이 완비되기 전까지는 몸을 씻고 피로를 풀기 위해 목욕탕에 가는 것이 일상적인 문화였다. 그래서 동네 곳곳에 들어선 목욕탕의 높은 굴뚝들이 도시의 풍경을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경남의 마산 지역은 1970~80년대 한국을 대표하는 경공업 지대로 많은 여성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었는데, ‘여공’이라 불리던 이들은 한일합섬 마산공장이나 수출자유지역의 기업에서 근무하였다. 회사 인근에서 자취나 하숙을 한 경우 이들은 퇴근하면 바로 단골 목욕탕에 들러 몸을 씻고 집으로 가곤 했었다고 한다. 작고한 유장근 교수(경남대 역사학과)의 논문에 잘 설명되어 있듯이 높은 목욕탕 굴뚝이 마산의 독특한 경관을 구성한 것은 이러한 사회적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동네 목욕탕은 더 이상 일상적인 공간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굳이 목욕탕에 가지 않더라도 가정집에서 얼마든지 따뜻한 온수로 샤워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럿이 함께 어울려 목욕을 하러 가는 것이 개인 사생활을 중요시하는 요즘 사람들의 문화적 기준에도 잘 맞지 않기 때문에 목욕탕을 찾는 사람들의 수요가 크게 줄어든 탓이다. 그나마 명맥을 잇고 있던 목욕탕들도 운영자들의 고령화, 코로나19 때의 영업 부진, 최근의 유가 급등 등으로 폐업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한국의 대중목욕 문화는 일제강점기에 일본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일본에는 ‘센토’(錢湯)라는 작은 동네 목욕탕이 크게 번성하였다. 한국과 달리 일본에는 방수와 난방 시설을 갖추지 못한 목조주택이 많았던 탓에 일본인들은 퇴근하면서 센토에 들러 따뜻한 물로 몸도 씻고 또 몸을 데워 잠자리에 들곤 했었다. 이렇게 일본의 서민들에게 목욕탕은 필수적인 생활시설로 각광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중목욕탕의 원조 격인 일본에서도 센토가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오랫동안 동네 한편을 지키고 있던 목욕탕이 헐리고 일반주택이나 원룸형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100년이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유명한 센토가 최근 문을 닫기도 하였다.

    자본이 몰리는 대도시의 동네 목욕탕들은 그 자리에 다른 건물을 지으면 되지만, 문제는 인구와 자본이 빠져 나가고 있는 중소도시들에서는 장기간 방치되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다. 일본의 지자체와 주민들은 동네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이 깃들어 있는 이 동네 목욕탕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의 문화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작은 마을 역사관이나 갤러리로 꾸미기도 하고, 주민들이 편하게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 시설로 활용하기도 하고, 또 건물이 특색이 있는 경우에는 카페로 리모델링하여 전국적인 핫플레이스로 만들기도 한다고 한다. 이제 한국에서도 동네 목욕탕들을 단순히 부동산으로만 보지 말고 동네 사람들의 삶과 기억을 간직한 문화자산으로 활용할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조정우(경남대학교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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