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7일 (토)
전체메뉴

[금요에세이] 노트북과 장바구니 - 조화진 (소설가·2002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 기사입력 : 2023-12-21 21:24:15
  •   
  • 조화진 소설가2002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고 난 뒤 무엇이 달라졌을까.

    생활인으로서는 등단 전과 달라진 점이 없다. 주부로서 가정의 의무를 다하고 시댁과 친정에도 맡겨진 일을 하고 내 삶은 여전하다. 다만 ‘나 자신’에게 관대하고자 노력했다. 관대함을 넘어 이기적으로 가자고. 아이들이 크고 집안일이 줄어드니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포커스를 맞춰나가리라 마음먹었다. 미혼 때처럼 나 자신을 위해 좀 더 이기적으로 사는 시간을 늘리고자 했다. ‘좀 이기적이면 어때, 내 인생 내 건데.’ 오롯이 나를 위해 책을 읽고 작업을 하고 여행을 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늘렸다.

    첫 책을 내고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 당시는 자아에 도취된 나르시시스트가 무색하게 잘 쓸 것 같았고 자신감을 가졌다. 시간이 가고 과거의 책을 읽어보니 부끄러웠다. 아무것도 아닌 걸 쓴 것 같았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쓰지 않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 쓰는 것도 미래에는 그런 마음이 들지 모른다. 작품도 나이와 함께 늙어가는 것 같다. 나이만큼 시선이 달라진다는 것을 느낀다. 나이를 먹는 만큼 세상을 이해하는 폭이 변화하고 경험도 늘어나고 관심이 달라지는 건 당연할 것이다. 글의 주제도 소재도 변해가면서 쓰고 싶은 얘기가 많아지는 것은 작가로서 보는 시각을 훈련해서 얻어진 효과 같다. 글쓰기는 끝없는 훈련과 성실함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미국의 뮤지션이자 작가인 ‘패티 스미스’는 집에서 걸어서 가는 카페에 가서 작업하는 걸 즐겼다. 집을 놔두고 도시의 방랑자처럼 두어 군데의 카페를 찜해 놓고 다녔다. 골목 귀퉁이에 있는 눈에 띄지 않는 곳을 단골로 정하고 아침이면 출근했다고 한다. 구석 자리에 앉아 작업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내 방이나 작업실이 없는 나는 카페에 간다. 적당한 소음이 있어서 오히려 몰입하기에 좋다. 손님이 없는 아침의 카페는 공간을 혼자 다 차지한 느낌을 주기에 좋아한다. 커피 한 잔 값을 지불하면 생기는 공간과 시간 값은 너무 싸다는 생각을 한다. 카페의 첫 손님으로 가서 뭐든 하고 있으면 금방 오전이 지나간다.

    집에 들어오면서는 장을 본다. 외출했다 집에 오는 내 양팔은 언제나 축 늘어져 있다. 한 손에는 노트북, 한 손에는 무거운 장바구니가 들려 있어서다. 사도 사도 살 것은 얼마나 많은지 장을 보는 것도 옮기는 것도 노동이다. 집에 와서는 해도 해도 할 일은 넘쳐나니 주부의 역할은 끝이 없는 일 지옥이지만 사회에서 주부라는 인식은 그저 집안일이나 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역할 분담 없이 자유로워진 시대라고 해도 주부는 한 가정의 살림을 떠맡는 중책의 의무를 가지고 있다. 사회의식의 변화는 눈에 안 보이게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고 하고 싶은, 해야만 하는 일거리가 있다는 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다음 날도 여전히 내 양손에는 노트북과 장바구니가 들려 있을 것이다.

    조화진 (소설가·2002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