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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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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제자리 찾기 4 - 주강홍 (경남시인협회장)

  • 기사입력 : 2023-12-21 21: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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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의 흥부를 권선징악의 교훈을 제쳐 두고 시대의 잣대로 재밌게 뒤집어 접근해보면, 쇠잔한 가난 속에서도 사랑은 거룩하여 다산으로 이 나라 인구 증대에 기여한 공로가 있고, 빌붙어 살아도 굶어 죽지 않는 처세와 횡재의 꿈을 후대에 가르쳐 준 은혜로운 존재일 수 있겠다. 심약하고 게을러서 남에게 의존하고 눈치나 보고 사는 게 별 대우받을 일이 아니고, 제비 다리나 고쳐주고 대박이 터지는 것도 요행심만 심어주는 일이어서 더욱 칭찬할 일도 아니다.

    그는 불로소득의 허황한 꿈을 후세에 귀한 사례를 남겼고 폐해의 원인 제공자로서의 위치를 전혀 피할 수가 없다.

    다단계가 사기를 치고 코인이 가슴을 파헤쳤고 부동산 투기로 금융 건전성이 황폐해졌다. 고금리로 깡통이 된 주식이나 선물시장도 흥부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는지 모르겠다. 로또를 사서 오죽 신성한 종교의 기도 힘을 빌려 당첨을 기대하는 심리도 발원지가 별다를 것 같지가 않다. 건전한 노동의 대가나 성실한 사람은 잔챙이가 되고 발 빠르게 이재를 좇는 이가 현자로 존중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분의 급상승과 그 한 건의 밑천을 위해서 공금에 손을 대고 어두운 돈으로 뒷주머니를 채우는 일도, 끗발을 기대하는 도박도 잘만 하면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위험한 사고도 연결성을 부인할 수 없다.

    흥부의 아류들은 직장은 많은데 일할 사람이 없다. 적게 일하고 많이 받고 싶다. 내일의 보상보다 당장이 시급하다. 놀아도 부끄럽지 않기에 거친 일은 아예 부모들도 만류한다. 휴직 수당은 장기 근로자를 우롱하고 잦은 이직으로 전문성과 업무의 연속성이 파괴된다. 건전한 재테크나 직업 선택권을 나무라는 건 아니다. 한건주의의 악폐와 불의를 경계하는 말씀은 분분하지만 세태의 문화로 변명되어 답이 없기에 세상의 벽에 소리를 질러본다. 에둘러 우리의 은혜로운 흥부를 건드려 본다. 고전의 가치를 훼손하고 선을 유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인 11층에 무거운 택배가 왔다. 코끝이 빨간 청년에게서 건전한 노동의 땀을 본다. 아픈 관절을 달래며 타박타박 계단을 올라 온 충실한 임무에 주스 한 잔을 건넨다.

    주강홍 (경남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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