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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서울이 허락한 ‘로컬’- 희석 (작가·독립출판사 발코니 대표)

  • 기사입력 : 2023-12-21 21: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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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 전 소셜미디어에서 누군가 미국의 초밥 문화를 경험하고 쓴 글을 봤다. 당연히 개인적 사례이며 농담도 섞여 있겠지만, 미국에 한 번도 가지 않은 나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정도여서 재미있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미국 사람들 대부분 고급 어종에 속하는 횟감이 올려진 초밥 대신 달걀말이 초밥, 자숙 새우 초밥, 아보카도 초밥, 오이와 게맛살만 들어간 김밥 등을 일식 레스토랑에서 먹으며 “wonderful sushi”를 외친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광어회, 연어회, 생새우회, 고등어회, 성게알 등 다채로운 횟감이 올려진 초밥은 선호하지 않는 것이다. 아마 초밥에 진심인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본다면 발을 동동 구르지 않을까. 물론 달걀말이 초밥도 훌륭하긴 하다. 그러나 엄격한 선별 과정을 거쳐 감칠맛이 오를 때까지 숙성해 한 점, 한 점 조심스럽게 올려 내놓는 회초밥보다 달걀말이라니. 자숙 새우라니. 아보카도라니! 아, 달걀말이와 자숙 새우와 아보카도에 진심인 독자분들께는 심심한 사과를 미리 전한다. 아무튼 이 글을 읽으며 혼자 쿡쿡 웃다가 문득, 지금 우리 주변에도 이런 식으로 소비되는 요소가 떠올랐다. 바로 하루가 멀다고 언급되는 그 ‘로컬’ 말이다.

    로컬 콘텐츠, 로컬 문화, 로컬 플레이스 등 언제부턴가 조금만 지역 색깔이 묻어있으면 로컬이라는 형용사가 붙는다. 그런데 가만히 보고 있자면 어쩐지 서울 중심의 시선에서 해석된 것들이 많다. 오히려 로컬 현지인 입장에서는 ‘저걸 왜 우리 지역 대표 문화로 소개하지?’ 싶은 것들이 주르륵 나열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로컬스럽다고 평가받는 것들이 천편일률화되는 면도 없지 않다. 빈집을 활용해야 하고, 돈을 좇지 않아야 하고, 지역 발전을 최우선 순위로 둬야 하고, 외지인이 가볍게 즐기고 떠날 수 있는 것들만이 ‘찐 로컬’로 불린다. ‘서울이 허락한 로컬’만이 가치 있는 문화가 되는 느낌이랄까. 지역민들이 실제로 아끼거나 즐기는 것들은 배제되고 있다. 마치 아무런 바다향 없이 가볍게 삼킬 수 있는 아보카도 초밥이 ‘미국이 인정하는 초밥’으로 자리 잡는 것처럼 말이다.

    로컬은 사실 낭만과 거리가 멀다. 미디어에 회자되는 로컬 성공 신화는 수많은 실패와 인구 소멸 사이에 빛난 극소수 사례일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 지역민들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빈집 활용, 후한 인심 등도 지역 현실을 전혀 모른 채 그리는 동화에 가깝다. 빈집 한 채를 활용하려면 얼마나 많은 행정작업과 비용이 수반되는지, 비수도권도 물가 상승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등의 사정은 로컬 파라다이스 서사에 끼어들지 못한다. 그럼에도 로컬이 미래라거나 로컬만이 희망이라는 찬양에 가까운 말들을 보면 여러모로 씁쓸하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해보자면 이런 생각도 든다. 정말로 로컬이 미래고 희망이라 말하는 사람들은 왜 그토록 좋은 로컬에 ‘정착’하려 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저 로컬이 영원한 소비재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을 예쁜 말에 포장하려 하는 게 아니냐고 묻고 싶을 때가 많다.

    너무 비뚤어진 시선 같다고?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로컬’이 아닌 ‘지역’으로 지금 오시라. 소비하는 로컬이 아닌, 살아내는 지역을 경험할 때 당신의 대답은 달라지지 않을까. 고등어회 초밥의 비릿하지만 깊은 맛은 현지에 녹아들어야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동화가 아닌 현실에서 우리 다시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희석 (작가·독립출판사 발코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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