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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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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아이의 또 다른 집- 김태경(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24-01-04 18:5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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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가 15개월이 되었을 때 복직을 했다. 미루고 싶었지만 기어코 다가온 날이었다. 아이는 엄마 아빠의 품을 벗어나 어린이집이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갔다. 직시한 현실은 애달팠지만, 잠깐의 헤어짐에 익숙해지려 노력했다. 어린이집 적응 기간은 엄마의 적응 기간이기도 했다. 가슴 한 부분이 뭉텅 떨어져 나간 느낌. 갑자기 툭 놓여진 몇 시간. 내내 아이의 걱정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3년이란 시간이 다가온다. 유치원 등록을 마쳤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차곡차곡 쌓여간 사진과 영상은 아이의 성장 파노라마다. 겨우 잡고 걸음마를 하던 아이가 자박자박 걷고, 콩콩 뛰고, 넓은 잔디 공원을 깔깔 웃으며 뛰어간다. 지금은 자신의 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한다. 삐치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막춤을 추는 아이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1년이란 시간이 아이의 성장에 얼마나 충만한 시간인지 깨달았다. 하나의 세상으로 우뚝 일어서 살아가는 아이를 보며, 매일 감동한다.

    이 시간에 닿기까지 힘든 날이 꽤 많았다. 등원시킬 때마다 떼어놓는 느낌에 돌아서는 마음이 착잡했고, 아픈 아이의 몸이 처질 때는 한없이 속상했다. 유난히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날. 아이의 시무룩한 얼굴이 출근길에 자꾸만 아른거렸다. 아침에 제일 먼저 등원하고 제일 늦게 집으로 돌아가는 딸아이였다. 퇴근 후 어린이집 현관문을 열 때면 아이의 얼굴이 빛났다. 그런 아이를 보는 순간 힘껏 끌어 안았다. 아이의 뛰는 가슴을 느끼며 고맙고 미안한 감정이 뒤엉켰다.

    단단하게 믿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잘 놀고 잘 먹을 거라고. 정말로 그랬으니까. 요즘은 어린이집에 계속 가고 싶다고 보채기도 한다. 저보다 어린 동생에게 단어를 가르치고, ‘언니’라는 말을 들으며 히쭉 웃는다.

    지금의 어린이집을 선택했던 건, 원장님의 곡진한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단순한 원생 모집이 아니라, 일하는 부모의 상황을 보듬는 느낌이었다. 다른 어린이집을 상담했을 때는 일하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받는 느낌이 아니었다. 가정집처럼 포근한 분위기도 좋았다. 아이가 큰 공간에 덩그러니 있는 것보다 좋을 것이라 여겼다. 원장님이 허물없이 아이들과 지내는 모습도 좋았다. 카리스마와 다정함이 공존해서 존경스러웠다.

    어린이집은 아이가 처음으로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고 질서와 배려, 용기와 친절을 배우는 곳이다. 아이들로 가득한 공간으로 들어가 본 적이 있는가. 아이들이 공간을 채우면 그 환한 생동감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아이들의 표정과 목소리가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마법을 부린 듯하다. 하지만 종종 뉴스를 통해 경악을 금치 못하는 소식을 듣곤 한다. 아이들이 있는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을 말이다. 어른은 왜 어른일까. 자신과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어른이지 않을까. 아이를 대상으로 몹쓸 짓을 저지르는 사람이 망각한 것은 자신이 어른이라는 것이리라.

    아이들의 세계는 점차 확장될 것이고 더 거친 세상의 면면과 부딪혀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처음으로 나아간 세상, 그곳에는 환대(歡待)만이 가득했으면 한다. 아이들의 또 다른 모든 집이 그러하기를 새해를 맞아 기원해 본다.

    김태경(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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