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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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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정암나루에서 해맞이를 하다- 조경숙(수필가)

  • 기사입력 : 2024-01-11 19:2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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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솥바위(鼎巖·정암)가 있는 정암나루다. 꽹과리 소리가 ‘따당’ 하고 어둠 속 정적을 깨우자 멈춰 있던 시간이 새벽으로 걸어 나오는 것 같다. 징소리가 하늘을 열고 뒤따르는 장구와 북이 대지를 깨우며 해가 떠오르기를 재촉한다. 점점 붉어지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는 해맞이 관중은 모두 숨을 죽인다.

    새벽이 슬그머니 물러설 무렵 해맞이 인파는 하나둘 정암나루 강둑을 메운다. 서걱서걱 서리를 밟는 군중의 발자국 소리가 의병을 닮았을까.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새 아침의 결기가 느껴진다. 아이 손을 잡은 젊은 부모들은 걸음이 느리고 연인들의 볼은 발그레한 미소가 가득하다. 밤새 내린 서리는 빨간 남천나무 잎을 별빛 같은 금강석으로 만들어 수런거리는 행렬을 축복한다.

    언 손을 녹여가며 솥바위 메모지에 꾹꾹 눌러쓴 희망은 둑길 소원 등에 자리를 잡는다. 팍팍한 세상 저마다의 간절한 꿈과 소망이다. 희끄무레한 무채색 동쪽하늘이 붉은 꽃처럼 얼굴을 내밀 즈음 망우당 곽재우장군 동상의 기상은 더욱 강건해진다. 조명으로 치장한 누각은 태고의 모습까지 드러내며 위용을 뽐낸다. 함안과 의령을 잇는 철교 위로 어제와 오늘이 지나간다. 과거는 물론, 미래의 역사를 껴안을 연결고리처럼 튼실한 철교다. 새벽안개로 신비에 싸여 있던 강 건너 월촌 들녘도 구들목 이불 같은 따뜻하고 넉넉한 자태를 드러낸다.

    정암 솥바위는 부자와 풍요의 아이콘이다. 솥바위를 품에 안은 남강은 낙동강 제1지류로 남덕유산에서 발원한다. 경호강을 거쳐 남강댐에서 가쁜 호흡을 가다듬고 의령과 함안을 양쪽 품에 껴안고 흐른다. 정암나루 솥바위를 휘돌며 낙동강으로 나아간다. 덕유산의 정기로 시작된 부자의 물길이 아닐까.

    정암나루는 임진왜란 당시 치열했던 의병 전투지다. 곽재우장군이 이끄는 의병의 승전이 아니었다면 호남으로 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그 소중했던 요충지는 우리의 강산을 일찍이 송두리째 내어주어야 했던 생과 사의 물길이기도 하다.

    솥바위를 중심으로 20리 반경에 큰 부자가 많이 나온다는 전설이 있다. 대기업 삼성을 필두로 LG, 효성, 삼영, 세라젬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던 기업 창업주가 솥바위 전설을 현실로 증명했다.

    솥은 생명을 잇는 삶의 도구다. 물은 정화며 회복이고 창조이며 길이다. 삶이 고단할수록 간절함의 깊이는 비례하나 보다. 평소에도 내밀한 소원을 이루기 위해 솥바위를 찾아 두 손을 모으는 이도 많다. 하물며 새해 첫날은 자신만의 결기를 다지며 성취를 기원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끌기엔 충분한 곳이다.

    완연한 새 아침의 해가 선홍빛 얼굴을 내밀자 둑이 터진 강물처럼 해맞이 관중의 함성은 하늘로 치솟는다. 내게 없는 것과 가지지 못한 것을 과녁으로 삼고 허덕이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를. 부족함에도 더러 초연할 수 있기를 다짐한다.

    양극화의 삶이 극명한 시대다. 물질의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궁핍의 절실함이 그 무게를 더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기심과 욕심으로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뉴스가 삶을 허탈하게 한다. 올해는 가슴 한편에 촛불 하나 켜고 싶다. 나의 작은 소망에 화답하듯 눈부신 햇살은 나루의 물빛이 되어 용의 비늘처럼 반짝인다.

    조경숙(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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