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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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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소문내고 싶은 ‘우리동네 G-미술’- 강지현(문화체육부장)

  • 기사입력 : 2024-01-22 19:3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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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영 바다를 보며 세계 최고의 화가를 꿈꾼 소년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통영에선 미술을 배울 곳이 없어 독학으로 꿈을 키웠다. 코발트빛 바다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일흔이 되어서야 이름이 알려지고 그림도 팔리기 시작했다. 아흔다섯,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그는 ‘한국의 피카소’,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한국 추상화가의 대가 전혁림(1915~2010)이다.

    또 다른 소년이 있었다. 마산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고단했지만 행복했다. 열여섯에 일본으로 밀항해 온갖 알바를 하며 미술학교에 다녔다. 해방 후 마산에 머물다 서른아홉 무일푼으로 다시 프랑스로 간다. 그곳에서 조각가로 명성을 얻는다. 쉰여덟에 마산으로 돌아와 일본 고학시절 모은 돈으로 사두었던 고향집 뒷산에 미술관을 짓는다. 직접 바닥을 깔고 옹벽을 쌓고 연못을 만들었다. 완공까지 14년. 이듬해 일흔둘의 치열한 생을 마감했다. ‘노예처럼 일하고, 신처럼 창조한’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1922~1995)이다.

    여기는 진주. 자존감 충만한 한 소녀가 있었다. 일신여고보(현 진주여고) 졸업 후 일본 유학을 다녀왔다. 서른셋에 프랑스로 떠나 파리 화단에 빠르게 진입한다. 뜨겁게 작업했고 2600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91세 일기로 프랑스에서 눈감았다. 마지막 작품은 ‘일무(一無)’라는 호(號)가 새겨진 우주그림. 호는 한때 통도사에서 도자기 작업하던 시절 성파 스님이 지어줬다. 그녀는 예술가로 찬란한 삶을 살다 간 이성자(1918~2009)다.

    전혁림·문신·이성자는 경남 출신 미술거장들이다.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이들의 삶을 짧게나마 소개한 이유는 ‘G(경남)-미술’을 알리고 싶어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길 수 있으니까.

    세 거장의 고향엔 그들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있다. 이제는 ‘힙한 동네’가 된 통영 봉수골에 가면 전혁림미술관이 있고, 마산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추산동 언덕엔 창원시립문신미술관이, 남강을 낀 진주혁신도시 빌딩숲 사이엔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경남엔 보석 같은 미술인이 많다. 하지만 그 가치를 먼저 알아보고 선점하지 못하면 귀한 자산을 놓치고 만다. 지난 2015년, 일본 나오시마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부산에 이우환 개인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이우환은 함안 출신이다. 서울 북한산 자락엔 자연과 어우러진 문화공간 김종영미술관이 있다. 한국 추상조각의 거목으로 불리는 김종영은 창원에서 나고 자랐다.

    반면 의미 있는 시도들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는 진해에서 활동한 추상미술의 선구자 고 유택렬 화백 탄생 100주년이다. 이를 기념해 제자·유족 등이 추진위를 구성, 다양한 사업을 준비 중이다. 그런가 하면 김해시는 올해 전국체전에 맞춰 김영원미술관을 조성할 계획이다. 김영원은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을 빚은 현대조각계의 거장이다.

    잘 가꾼 문화예술 콘텐츠는 사람을 끌어모은다. 매력적인 ‘G-미술’은 세계적인 ‘K-컬처’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러려면 지역민의 관심과 사랑이 먼저다. 지난주에 시작된 기획 ‘한국미술을 빛낸 경남의 거장들’이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경남미술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쏟아질 예정이다. G-미술도, 새 기획도, 많관부!(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강지현(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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