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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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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탁구 이야기- 하헌주(시인·밀양문학회장)

  • 기사입력 : 2024-01-22 19:3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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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탁구 종목이 인기가 많다. 지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결과이기도 하지만, 생활체육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동호인들이 쑥쑥 늘어났다. 경남에서도 매월 주말이면 거의 ‘경남오픈대회’가 열릴 정도다. 참가 선수도 남녀노소 불문하고 1000명을 훌쩍 넘는다. 도시마다 탁구장이 늘어나고, 동호인 클럽도 부쩍 활성화되어 간다. 국민 건강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개최 도시의 지역경제 활성화 등 여러모로 좋은 일이다.

    필자도 생활체육인으로 탁구를 즐기는 세월이 10년은 넘었다. 그러나 부지런하지 못한 천성으로 실력은 아직도 동급 최하위 수준이다. 오픈대회에 나가면 겨우 예선을 통과하느냐가 관건이니 말이다. 그만큼 젊은 20~30대 선수가 많이 늘었다. 체계적인 수업을 받은 움직임과 파워를 감당하기가 버겁다.

    탁구는 실내 스포츠의 장점이 많고 큰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함에도 큰 도움을 준다. 빠른 판단력과 순발력을 키우게 되므로 각종 성인병과 특히 치매 예방에도 한몫을 단단히 한다. 여러 복지, 문화, 요양 등의 시설에 탁구대가 놓여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딱 한 가지 덧붙이자면 다른 종목에 비해 즐기는 데 비용이 적게 드는 편이다.

    오늘 하고 싶은 ‘탁구 이야기’는 좀 다른 성격이다. 필자가 10여 년 전에 혼자 낙향하여 딱히 마음 둘 데가 없는 저녁 시간이 늘어났다. 그때 마침, 밀양시립도서관에 탁구장이 생겼다. 시민을 위해 무료 개방해 옛적에 탁구 라켓 좀 만졌다는 재야의 고수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하루의 피로를 흠뻑 땀으로 배출한 뒤의 시원한 생맥주 맛은 지금도 여전하다. 빠른 기간 내에 도서관 탁구장은 비좁게 되었다. 그만큼 많은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중에서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 자연스레 동호인 클럽을 만들게 되었다. 클럽 회원끼리 시립 시설을 독차지 못하므로, 최우선은 ‘클럽전용구장’을 갖는 것이었다. 이때 이미 밀양 시내에 몇몇 사설 구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시, 뜻을 모았다. 개인 회원마다 50만원 이상씩 모아 전용 구장을 만들기로 하였다. 필자가 회장직을 맡아서 회원들을 일일이 만나 3000만원 정도를 어렵게 모았다. 우리 구장이 생기면 1년 후부터, 매달 100만원씩을 순번대로 갚아준다는 약속을 했다. 구장 사용료를 모아서 아끼고, 신입회원을 늘리면 가능한 일이라고 설득했다. 서로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이야기다. 따로 탁구장을 운영하는 관장이 없는 회원이 바로 주인인 셈이다. 어떤 의욕만 앞세워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일종의 투자금이 회수될지 의심하는 회원들은 이미 떠나고, 스무 명 남짓이 이룬 결과였다. 그해 봄은 참으로 행복했다. 탁구장 바닥 공사부터 하나하나 제대로 모습을 갖춰 갈 때, 회원들은 저마다 소질을 발휘하여 힘을 보탰다. 바로 우리의 구장, 곧 나의 구장이 완성되는 것을 지켜본 것이다.

    왜 우여곡절이 없었겠는가. 문제가 생길 때마다 회원들을 만나 무릎을 맞대고 밤을 지새운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따뜻한 격려를 해주었던 선배님과 함께 집행부를 꾸려나갔던 동료들, 끝까지 믿고 따라온 후배들이 늘 고마웠다. 그렇게 4년 동안 투자금을 모두 돌려주고 홀가분하게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지난가을에 클럽 10주년 기념 탁구대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올해는 5대 회장이 취임했다. 인구 10만의 작은 도시에서 클럽 회원 수가 50명이 넘는다. 필자의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참 잘한 경우다. 스스로 만족하고 늘 자랑스럽다.

    새해가 밝은 지도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거창한 관념보다는 작은 일에 몸을 기울이자. 이미 내 곁에 성큼 와 있는 행복을 모르고 놓치지 말자. 그래야 저 언덕 너머 새봄이 오는 것을 볼 수 있으리라. 나는 오늘도 탁구장으로 간다.

    하헌주(시인·밀양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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