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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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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집을 고치다- 김태경(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24-02-01 19: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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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년 봄부터 부모님의 오랜 옛집이 공사에 들어갔다. 100여 년의 시간을 간직한 기와집의 탈피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고 어마어마한 대공사로 변화를 준 것은 아니다. 그러려면 어마어마한 금액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투입되어 전기 공사가 완료되었다. 자, 그다음 우리 손이 움직일 차례였다.

    봄부터 시작된 옛집의 여정은 여름을 꼬박 채우고 가을의 초입에 이르러 마무리되었다.

    남편과 나는 집을 고치고 꾸미는 걸 좋아한다. 우리의 첫 신혼집을 6개월간 고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신혼집은 오래된 아파트였다. 25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본래 상태 그대로였다. 처음 집과 마주했을 때의 서늘한 기운을 잊지 못한다. 욕실을 봤을 때는 그야말로 80년대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산뜻하고 따스한 구석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욕실을 제외한 나머지를 우리 손으로 고치고 바꿔가기 시작했다.

    지칠 대로 지친 허연 전등 빛도 노란빛으로 바꾸었다. 그것만으로 집이 한층 따스해졌다. 칙칙한 문들과 벽지도 밝은색 페인트로 칠했다. 작업이 난감했던 주방의 한쪽 벽면은 적벽돌로 작업했다. 사진을 찍으니 꽤 근사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뚝딱뚝딱 고치고 칠하는 중간중간 구경하러 오시는 분들도 있었다. 집의 변화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게 된 것이다.

    시간이 없어 퇴근 후 조금씩 진행하던 작업은 6개월이란 긴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그 과정은 고단했고 버거웠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수고의 뒤에 바뀐 집의 모습 때문이다. 인내의 시간을 무던히 지나면 집은 새롭게 거듭났다.

    탁하기만 했던 집은 서서히 색을 찾아갔다. 아기자기한 소품과 원목의 가구들로 포근한 공간으로 변신했다.

    신혼집을 방문한 지인들이 했던 말은 ‘카페’ 같다는 것이었다. 카페는 안 가도 되겠다며 엄지를 치켜주었다. 보이진 않았겠지만, 남편과 나의 어깨가 천장 끝까지 올라가지 않았을까.

    부모님의 옛집을 고치면서도 같은 과정을 지나왔다. 여름에는 땀과 더위, 벌레와의 전쟁이었다. 작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없었다.

    집을 고쳐나가면서 의도했던 모습이 안 나와 당황하기도 했다. 다시 도전하고 도전해서 원했던 느낌으로 다가갔다. 중간에 포기했다면 느낄 수 없는 재료의 질감을 구현했을 때를 잊지 못한다. 옛집은 수수한 겉모습을 유지하면서 내부는 일상생활이 편리하도록 바꾸었다. 지루했던 방은 잠이 솔솔 올 것 같은 포근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서까래의 고운 선들이 옛집의 정체성을 단단히 받쳐주고 있다.

    집을 고치는 과정은 인내의 시간이었다. 우리의 손을 통해 하나의 창작물이 만들어지는 느낌은 충만 그 자체였다. 그리고 더 깊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나라는 사람, 그 어느 면을 반영해 주기도 했다.

    어느 순간은 집이 곧 나라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기도 했다.

    집을 고치면서 알게 되었다. 그 과정과 끝에서 얻은 위안으로 삶을 일으킬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집을 고치는 건 더 깊은 나로 나아가는 수행의 길이었음을 말이다.

    김태경(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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