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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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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발언대] 사망사고 그 이후- 김용락(사회부)

  • 기사입력 : 2024-02-12 19:3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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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망했다. 60대 남성이, 80대 여성이, 40대 남성이, 20대 여성이. 산업재해로, 화재로, 교통사고로, 때로는 원인불명으로.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안타까운 사망사고 기사를 쓰게 된다. 육하원칙에 맞춰 기사를 쓰고 있으면 기사가 글로 만들어진 빈소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조금은 차갑고 무겁지만 말이다.

    한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글. 어쩌면 고인과 유족의 동의 없이 써진 무례한 글. 그럼에도 언론이란 단어로 모든 게 허용된 글. 모든 언론사가 일제히 쏟아내는 사망 기사는 유독 시간 대비 조회수가 높게 나온다. 글로 쓰여진 빈소에 찾아와 국화꽃 한 송이 놓는 추모의 의미이길 바랄 뿐이다.

    사회부 기자는 죽음과 가깝다. 여러 죽음의 사연을 담다 보면 죽음에 무감각해지거나 짙어진다. 사망기사를 감정 없이 쓸 때도 있었다. 요즘은 인생의 덧없음을 많이 느낀다.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인 사고가 예측 가능하게 반복되기 때문이다. 반복되게 죽고, 비슷하게 쓰이고 읽힌다. 언제나 죽을 수 있다는 불안감은 삶을 허무하게 만든다.

    사망 기사가 단순 가십거리로 소비되고 있다. 기자가 타인의 죽음을 널리 알릴 권리가 있는지 되묻는 이유다. 권리가 있다면 죽음을 다룬 기사 이후에 무엇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무엇이 조회수로 이어진 돈이라면 역시 허무하다.

    돌이켜보면 결코 허무함이 큰 세상이다. 떠날 이에게도 떠난 이에게도 언론은 나쁜 의미로 관심이 많고 또 나쁜 의미로 무관심하다. 그 나쁜 관심과 무관심에서 허무와 회의로 물든 폭력이 피어난다.

    언론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독자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세상을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들 노력. 그런 노력을 다각적인 면에서 다양한 형태로 구현해 전달해야 언론이 아닐까. 그리고 그 역할은 사회부에게 가장 알맞다.

    무미건조한 사망사고 기사 후에는 따뜻한 위로와 냉철한 진단이 필요하다. 차갑게 판단하고 뜨겁게 비판해야 한다. 그래야 죽음과 가까운 기자가 죽음과 멀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몇 줄의 사망사고 기사를 적으면서 마지막에 꼭 넣고 싶었던 문구가 있었다. 가볍게 다뤘던 수많은 죽음에 수없이 죄송한 마음을 담아 이 글에는 넣어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용락(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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