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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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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 에세이] 나의 동화 속 캐릭터- 남경희 아동문학가(202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 기사입력 : 2024-02-22 18:5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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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을 퇴직하고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많은 습작에도 불구하고 진전이 없어 막막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 있는 막내아들이 새끼 고양이를 한 달간 키워달라는 전화를 했다. 아들 표현을 빌리자면 ‘길거리 출신’의 고양이로 이름은 ‘백호’라 했다.

    막상 백호가 도착한 날, 고양이보다 긴장한 건 나였다. 작은 몸으로 꼬물꼬물 다가오면 만지지도 못하고 무서워서 도망가야 했다. 고양이 털도 신경 쓰였고 안방만큼은 절대 못 들어오게 방어했다. 조금이라도 울거나 하면 우리 부부는 밤잠을 설쳤다. 하지만 내 마음의 방어벽은 점점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사랑스러운 몸짓과 밀당의 선수 덕에 절간 같았던 집안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해 겨울, 백호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내 동화의 주인공으로 탄생했다. 감사하게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선물까지 안겨 주었다.

    환갑의 늦깎이 동화작가가 되어 장편 동화에 도전했다. 주인공과 조력자, 적대자 등 많은 캐릭터가 필요했다. 문득 이십여 년간 캠퍼스에서 더불어 지냈던 제자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현대적인 외모와는 달리 전통적 사고의 소유자, 아무런 연락도 없이 장기간 결석하고도 해맑게 웃으며 안부를 전하는 넉살 좋은 학생. 무색무취였던 학생이 축제에서 화려한 춤사위로 인기를 얻고, 투명인간 같은 존재였는데 빼어난 노래 실력으로 여학생들을 설레게 하고, MT 가서 맛있는 요리로 모두를 행복하게 하고, 심지어 데이트비용을 빌려 가 여태 소식이 없는 녀석까지 다양하다.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결핍’이 많았던 학생이다. 경제적 또는 부모 문제로, 혹은 나이가 많은 학생 등등. 그들이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끝내 원하는 일자리를 얻어 어엿한 사회인으로 첫걸음을 떼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흐뭇했다.

    동화에서도 ‘결핍’이란 필수 요소이다. 결핍이 많은 주인공이 고난을 극복하고(때로는 판타지를 경험하고) 성장하여 새로운 인물로 거듭나는 게 전형적인 플롯 중 하나이다.

    다행히 지난해 첫 동화책이 출간되었다. 20세기 초, 조선에서 처음으로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으로 이민 간 사람들 이야기이다.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결핍이 많은 사람이었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떠났지만, 진작 하와이에서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다 조국이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3·1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허리띠를 졸라매 독립자금을 모아 상해임시정부에 보냈다. 이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조국이 공업 국가로 다시 일어서야 한다며 인천(첫 이민자들의 상당수가 인천 사람들이었다)과 하와이의 첫 글자를 딴 ‘인하공과대학’ 설립을 도왔다. 그야말로 결핍을 극복하고 성장과 성공을 이뤄낸 결과가 아니겠는가.

    엊그제 어느 제자가 내 동화책을 읽었다며 전화했다. 작중 인물 아무개가 나를 닮았다고 해서 한참 웃었다. 나는 과연 제자들에게 어떤 캐릭터로 남았을까 자못 궁금하다.

    남경희 아동문학가(202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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