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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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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에서] 아직 3월인데요 - 김순남 (양산 개운중학교 교감)

  • 기사입력 : 2024-03-12 20:4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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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화 소식이 한창입니다. 2월 중순부터 통도사 ‘지장매’ 소식이 올라오더니, 산청의 ‘남명매’ 개화 소식을 들었고, 섬진강 매화 소식도 보았습니다. 저마다 표현은 달라도 어김없이 찾아준 매화를 반기고 매서운 바람에도 피어난 대견함을 담은 마음은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매향의 그윽함이나 꽃의 자태를 예찬하는 이는 많되 그 꽃이 피는 과정을 말하는 이는 드뭅니다. 어떤 이는 갑자기 피었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갑자기 피어난 꽃은 없습니다. 매화만 하여도 한여름에 눈을 만들기 시작해서 낙엽이 지기 전에 꽃 기관을 완성한다고 합니다. 늦가을부터 휴면기를 가지다 1월 중순이면 완전한 꽃이 될 눈과 잎이 될 눈으로 정해진다고 하니 개화는 긴 시간 동안 준비된 결과인 셈입니다. 열매를 비워내고 더위와 가뭄을 이기고 적당히 쉬어야 꽃을 피운다고 하니, 시인 도종환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 다 흔들리며” 핀다고 노래한 까닭을 알겠습니다.

    봄날의 꽃소식에서 일어난 생각을 사람으로 옮겨봅니다. 터 잡은 곳이 학교이니 버릇이 되었습니다. 꽃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을 주목합니다. 꽃은 저마다 처지가 달라서 같은 꽃이라도 피는 때가 다릅니다. 같은 매화도 2월부터 3월까지 피지 않습니까? 같은 마당이라도 바람이 부는 곳인지 창가인지에 따라 피는 때가 다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먼저 피었다고 더 반기기는 하여도 늦게 피었다고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또 개나리는 3월에 피는데 왜 장미 너는 6월에 피느냐 하고 나무라지 않습니다. 그 까닭은 저마다 피는 때가 따로 있다고 믿기 때문이고, 같은 꽃이라도 날씨에 따라 피는 때가 다를 수 있다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녀를 대할 때는 왜 다를까요? 나이나 학년이 같다고 같은 능력을 요구하니 말입니다. 성적이 낮으면 학원으로 내몰고, 왜 그 모양이냐고 다그치는 일도 있지 않습니까? 말을 일찍 시작하는 아이가 있고 늦게 시작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열아홉 살에 능력이 극대화되어 나타나지만, 어떤 이는 더 늦기도 합니다. 그것은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선후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시험은 대체로 제한된 시간 안에 더 많은 문제를 푸는 학생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 표준화된 방식입니다. 그것이 인간 능력을 평가할 정확한 잣대인지는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사는 발달심리학 전문가 ‘토드 로즈’는 자기의 삶으로써 표준화된 평가 시스템의 허구성을 증명하고, 개개인성에 주목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를 〈평균의 종말〉이란 책에서 다양한 사례로 보여줍니다. 이 책은 인간과 인간 능력을 대하는 우리의 관념에 경종을 울리는 책이지만, 우리가 꽃을 대하는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학교가 학기를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이 학부모가 될 테고, 그분들은 자녀에 관한 걱정과 기대로 자주 흔들릴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피어난 꽃에만 환호하지 말고, 그 꽃이 피는 과정을 생각하는 일 말입니다. 아기의 배냇짓에도 행복했던 우리인데, 성적이 무에 그리 중요하다고 아이를 나무라겠습니까? 힘들어하고 지친 자녀에게 “지금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말을 해 보면 어떨까요? 아직 3월이니까요.

    김순남 (양산 개운중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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