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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개항 100년]개교 98년 마산성호초등학교

  • 기사입력 : 1999-07-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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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년 개교 100년을 맞는 마산 성호초등학교에 들어서면 마치 100년전으
    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든다.

    본관 2층의 40평의 교실을 활용해 만든 학교역사관인 「성호관」에는 이
    학교의 역사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1901년 개교 당시부터 보존돼온 학적부와 졸업장, 옛 사진 등 각종 학교
    의 기록을 비롯해 손때묻은 풍금, 아코디언, 등사기 등 1천여점의 자료가
    보관돼 있다.


    사진설명:1904년 지방유지들의 성금 2천여원으로 신축한 성호초등학교 본관
    건물. 지금은 헐리고 학교강당으로 신축됐다.


     구한말에서부터 개항, 일제치하, 광복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가
    이 곳에 압축돼 있다. 초등학교에서 이처럼 지난 세월의 역사가 체계적으
    로 정리돼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마산의 역사에 다름아니다.

     하지만 과거 역사가 잘 존중되지 않는 우리 사회 풍토로 인해 성호학교
    가 상대적으로 놀랍다는 평가도 할 수 있어 우리의 빈약한 역사의식이 아쉽
    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성호초등학교는 어떤 학교인가. 쉽게 말하면 마산 최초의 학교이자, 조선
    인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일제 치하 조선인들이 배우는 유일한 배움터로 한민족의 자존의식을 고취
    시켰던 학교였다.

     성호초등학교는 1901년 4월 학교 문을 열었다.
     마산포의 개항 2년후인 1901년(光武 5년) 4월 20일 당시 창원군에 있던
    소학교가 마산포로 옮겨 오면서 개설한 공립소학교가 전신이다. 공립소학교
    에는 부설 간이농업학교도 함께 있었다.

     소학교의 교장을 겸하고 있던 창원감리 이태정(李台挺)과 학교 교사 박용
    관(朴容觀)은 1904년 지방 유지들로부터 받은 기부금 2천여원으로 지금의
    학교 자리인 합포구 성호동 57_3번지에 교사를 지었다.

     1907년 4월 1일 칙령 제 44호(보통학교령)에 의해 마산 공립보통학교로
    새 출발했으며, 초대교장은 윤태권이었다. 공립보통학교 창설 당시 학생수
    는 남학생만 92명이었고, 3년제였다. 1회 졸업은 1908년으로 졸업생은 19명
    이었다. 개교가 1901년인데 1회 졸업이 1908년으로 연대가 맞지않는 것은
    1901년부터 1906년까지는 서당 형식의 학교였고, 1907년 공립보통학교로 출
    범하면서 비로서 학교의 틀을 갖춰 1908년 졸업이라는 행사를 가졌던 것으
    로 보인다.

     이런 연유인지 성호관에는 1회 졸업생의 숫자만 적혀 있을뿐 학적부는 보
    존돼 있지 않다.
     2회 졸업생은 1907년 5월 1일 입학, 1910년 3월 28일 졸업한 31명이었
    고, 3회는 34명(1907년 5월1일~1911년 3월 28일), 10회는 1918년 3월 22일
    졸업한 48명이었다. 지난 20일 91회 졸업식(183명)을 가져 지금까지 총 졸
    업생은 3만4천296명이다.

     1908년 3월 본교 교사가 준공되고 1909년에는 여학급이 증설돼 여학생 40
    명이 입학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 창신학교와 의신학교 등의 만세운동에 동참, 4월
    22일과 23·24일 등 3일동안 학생들이 학교안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일본인 교장과 교사들이 만류했지만 학생들의 뜻을 꺾지 못했다. 이 사건
    당시 3일동안 학교는 일시 휴교됐었다. 그러나 간이농업학교는 다음해 완
    전 폐교됐다.

     1921년 수업연한이 4년에서 6년으로 연장돼 지금의 6년제 틀을 갖췄다.
    1937년 완월분교장(현재 완월초등학교)을 분리했으며, 44년에는 상남공립국
    민학교(현재 회원초등학교), 70년에는 교방초등학교를 각각 분리시켰다.

     학교가 독립해 나가는 바람에 현재의 학생수는 2월 기준으로 27학급 947
    명으로 규모가 많이 작아졌다. 학생수가 가장 많았던 때는 70년대 후반으
    로 78년 3천903명, 79년 3천973명, 80년 3천946명이었다가 90년들면서 점
    차 감소, 현재 27학급에 947명이다. 60·70년대가 전성기였다.

     성호(城湖)라는 교명은 1944년 3월 25일부터 사용돼 마산 성호공립국민학
    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학교 주변에 성곽과 호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들어
    성호라고 지었다고 한다.

     성호관에 보관돼 있는 각종 자료는 당시의 교과목과 교과운영, 상장등 학
    사전반을 알수 있다. 2회 졸업생 김명조씨의 학적부에 나타난 교과목은 수
    신(修身) 국어 한문 일어 산술 지력 이과 도서 체조 창가(唱歌) 등이었고,
    각 10점 만점이었다.

     요즘식으로 한다면 수신은 바른생활, 지력은 사회·지리, 체조는 체육,
    산술은 수학, 도서는 책읽기를 말한다. 특히 창가(음악)와 일어과목이 일제
    의 침략사를 되새기게 한다.

     1934년 여학생 최인택씨(32회)의 통신부에는 국어 산술 국사 지리 이과
    직업 도서 수공(手工) 창가 체조 가사 재봉 조선어 등으로 돼 있고, 조선어
    의 점수는 매기지 않고 공란으로 비워놓고 있었다.

     홍순약씨(31회·前함안교육장)가 3학년때인 1936년 받은 상장에는 「操行
    善良 學業優等」으로 돼있다. 操行은 품행과 행실을 말한다. 배긍한씨(33
    회)가 5학년때 받은 상장에는 이 두가지에다 「身體强健」이라는 내용도 들
    어있어 예나 지금이나 우등생의 요건은 성적과 품행, 체력임에는 변함없다.

     통신부나 상장 등 옛 자료들은 졸업생들이 학교에 기증하는 것으로 학교
    측은 자료들을 받아 성호관에 보관, 전시하고 있다. 기증 자료들은 이뿐만
    아니라 졸업앨범, 교사 발령통지서, 졸업증서, 상장, 당선고지서, 사진 등
    헤아릴수 없이 많다.

     고향의 봄 작사자인 이원수선생(22회)과 조각가 문신씨(27회, 학적부에
    는 문안신으로 기록돼 있음), 향토사학자 이학렬씨(34회), 표동종 경남도교
    육감(42회), 해양환경과학자 강시환박사(49회)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성호관을 담당하는 김영수교사는 『졸업생들이 소장하고있는 자료들을 학
    교에 기증해주면 소중한 역사 자료로 보관될 것』이라고 말했다./조용호차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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