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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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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디지털 문화와 조급성

  • 기사입력 : 2000-02-1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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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의 조급성에 대해선 이미 세계에서도 알려져 있다. 세계 관광지마
    다 유별나게 「빨리 빨리」를 외쳐대는 바람에 금방 한국인이라는 걸 알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신호등을 기다리지 못하고 보도에서 차도로 내려서
    는 행인들, 외국인에 비해 절반 이상이나 빠른 식사시간,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자 마자 짐을 챙기고 내릴 준비를 하는 국민, 세계인들 중에 가장 보
    행속도가 빠르다는 것 등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무엇이 한국인의 심장박동을 한 박자 더 빨리 뛰게 만들었을까. 잠재의식
    깊숙히 「빨리 빨리」의 조급성을 지니게 한 것일까. 한국인은 과연 무엇
    에 쫓기고 있으며, 어느 방향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IMF체제 이후 언론
    매체마다 「다시 뛰자」는 슬로건을 내세워 경제 위기에서 재빨리 탈출하
    여 제2의 도약을 보이자는 국민공감대 형성에 열을 올렸다. 지금도 승용차
    에 태극마크를 넣고 「다시 뛰는 한국인」이란 문구를 넣은 스티커를 부착
    하고 다니는 것을 목격한다.

    어느새 우리는 조급성 체질이 되고 말았다. 느긋하게 한 걸음 물러서서 이
    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행동부터 보이려 든다. 한국인의 조급성향에 대
    하여 여러가지 측면에서 진단과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70년대 이후 빠른
    산업화와 고속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선 「빨리 빨리」가 수반돼야 했다.
    한 번 끓어오르면 단숨에 뜨거워지는 「냄비 근성」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
    다. 또한 광복이후 친일과 민족, 좌익과 우익, 남북 분단 등 정치적 환경
    적 요인으로 불안과 강박관념으로 쫓기는 듯한 심리상태가 된 것이라고 말
    하기도 한다.
    우리의 조급성에 대해 무조건 매도해선 안된다. 지금 이나마 경제성장을
    초고속으로 이뤄내고, 민족 자신감을 갖게된 것은 조급성이 자극제가 되었
    다. 어느새 한국인들은 속도감을 익히게 되었으며, 추진력을 가지게 되었
    다.

    그러나, 시간을 두고 주도면밀한 계획과 시공, 이성적 사고와 과학적 합리
    적인 방법의 추구, 장인정신의 결여 등으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붕괴
    사건 등 부끄러운 일들이 일어났다. 조급증은 편법과 불합리를 불러 시행착
    오를 일으킨다. 일시적으로 잘하는 듯 하지만, 나중에 보니까 부실 편법이
    지 않는가 하는 지적과 비판을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조급성을 없앨 수도 없다. 장점도 있는 반면 단점도
    있기에 이를 잘 알고 유용하게 할 방법을 강구하는 일이 최상이다. 조급성
    을 민족에너지원으로 전환시켜 가속화 되는 현대의 물결에 적응력을 갖추
    게 하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가 세계 선진국이 되고, 국제 무한경쟁에서 경
    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빨리 빨리」가 아니면 다른 방법이 없다. 다만
    「빨리 빨리」하되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였는지, 방법이 올바른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진단이 필요하다. 「빨리 빨리」 추진하고 실행에 옮겨도,
    시행착오를 일으키지 않는 제도적 합리적 과학적인 방법과 검증력을 갖춘
    시스템이 존재해야 한다. 조급성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장치와 활용력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인의 조급성은 단점만이 아닌 장점과 실용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지
    금에 와서 한 걸음 물러서서 모든 생활 패턴을 신중하게, 시간이 걸리더라
    도 철저하게 완벽하게 한다고 「천천히 천천히」를 표방할 순 없다. 변화
    가 곧 경쟁력이고 발전의 추진력이 되고 있는 현대엔 「빨리 빨리」가 제격
    인 것이다. 디지털문화 시대엔 가속화에 적응해야 하며, 한국인의 조급성
    은 시대 감각에 걸맞다. 인터넷을 통한 벤처사업 등 신속하고 빠른 추진력
    을 필요로 하는 일엔 한국인이 기질상으로 해볼만하다. 디지털문화를 선도
    하는 데 한국인의 조급성이 장점으로 빛을 발할 수 있게 보완하고 가꿔가
    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모든 면에 「빨리 빨리」를 활용해서 경쟁력을
    확보하되, 허장성쇠와 시행착오가 되지 않도록 조급성의 허점을 어떻게 보
    완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분석하고 강구하는 일이 중요하다.

    무한경쟁과 급변의 시대엔 한국인의 조급성을 최대의 강점으로 삼아 새 시
    대를 이끌 창의력과 추진력으로 점화시켜야 한다. 우리가 지닌 민족 기질
    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교육, 제도, 환경 등 모든 면에서 새로운 경쟁체
    제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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